[취재석] '니가 가라 험지'...정치에 멋이 사라졌다
입력: 2023.11.19 00:00 / 수정: 2023.11.19 00:00

김기현 이재명 등 '험지 출마' 권유 받지만 묵묵부답
정치권에 험지 출마 '바보 노무현' 뜻 이을 이가 없어


최근 정치권이 험지 출마 이야기로 뜨겁지만, 여야 주요 정치인들 대부분은 자신이 험지에 출마하겠다는 이는 없다. 서로 험지 출마를 권유하기만 하는 정치권의 현실에 비판의 눈길이 쏠린다. 사진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더팩트DB
최근 정치권이 '험지 출마' 이야기로 뜨겁지만, 여야 주요 정치인들 대부분은 자신이 험지에 출마하겠다는 이는 없다. 서로 험지 출마를 권유하기만 하는 정치권의 현실에 비판의 눈길이 쏠린다. 사진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더팩트DB

[더팩트ㅣ국회=송다영 기자] 최근 정치권이 총선을 앞두고 '험지 출마' 이야기로 시끄럽다. 현재 험지 출마를 요구받는 이들은 여야의 당 대표(김기현·이재명)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다. 내년 총선에서 당의 변화 의지를 보이고 '새 피 수혈'을 위해 중진 혹은 '스타 의원'들이 당 지지세가 약한 곳에 나가 희생정신을 보이라는 것이다. 험지 출마 요구를 받은 이들은 '무응답' 혹은 '어림도 없다'로 응답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험지 출마의 '자기희생을 통한 지역주의 정당 타파'라는 이상적인 목표는 사라져 간다. 오히려 남의 등을 떠밀어 계파 갈등만 유발하는 '니(네)가 가라 험지론'으로 변질돼 가는 모습이다.

당 지도부의 변화가 없다면, 정치의 선배인 중진들이라도 험지에 나설 생각은 없을까. '동일 지역구 3선 연임 금지' 등은 여야를 막론하고 총선 전 단골로 등장했던 혁신안이다. 하지만 그것도 사실상 힘들어 보인다. '정치 선배'들은 '능력주의'에 빗댄 주장으로 일관한다. 지역을 제일 잘 아는 현역 의원이자 그동안 가장 헌신해 왔던 자신이 여전히 정치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싶다가도, '참 멋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사석에서 누구보다도 '김대중 정신' '노무현 정신'을 기자들에게 열변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대표적인 험지 출마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1998년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 종로에 당선됐으나, 2년 만에 당선이 확실한 종로를 포기하고 2000년 민주당 지지율이 약했던 부산으로 출마해 총선을 치렀다. 지난 1998년 종로구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시. /노무현재단
노 전 대통령은 대표적인 '험지 출마'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1998년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 종로에 당선됐으나, 2년 만에 당선이 확실한 종로를 포기하고 2000년 민주당 지지율이 약했던 부산으로 출마해 총선을 치렀다. 지난 1998년 종로구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시. /노무현재단

노 전 대통령은 대표적인 '험지 출마'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1998년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 종로에 당선됐으나, 2년 만에 당선이 확실한 종로를 포기하고 2000년 민주당 지지율이 약했던 부산으로 출마해 총선을 치렀다. 결과는 낙선이었지만, 2년 후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험지 출마가 자신의 정치적 자산이 됐다'라는 호평을 받았고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당시 역사의 현장을 지켰던 민주당 의원들은 당시의 감격을 아직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의원들 말처럼, 지금의 정치에는 멋이 없다. '바보 노무현'은 없고, 생계형 정치인들만 남은 모습이다. 총선이 5개월여 남았지만, 선거제도 개편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여야가 '방치'하고 있다는 말이 더 맞다. 내년에는 아예 양당 구조를 더 공고히 하는 '병립형'으로 선거제도가 회귀할지도 모른다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국회 관계자는 "여야가 자기 주머니에 든 돈만 안 뺏기면 국민 욕을 먹더라도 의도적으로 침묵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지금의 상황을 표현했다.

일부 의원들은 현재 정치에는 '낭만'이 사라졌다고 한탄한다. 이들은 여야의 과도한 대결 구도로 정쟁과 정치 혐오를 유발할 뿐이라며 '이제는 정말 정치를 더 하고 싶지 않다'는 자조도 쉽게 한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는 환멸감은 뒤로 접어둔 채 '생존본능'만을 끌어올려 또다시 당내 경선과 본선을 위해 생사에 급급한 모습이다. 국민들은 '바보 노무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다. 정치의 낭만을 의원들이 좀 챙겨볼 순 없나.

manyze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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