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내든 카드마다 국민 무시하는 구태의연한 대여 공세에 불과
거대 야당이라면 민생문제를 정확히 꿰뚫는 정책으로 승부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위례 개발사업과 성남FC 후원금 의혹 관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남용희 기자 |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9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본회의에 상정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 수사를 맡고 있는 이정섭 수원지검 2차장검사와 ‘고발사주’ 의혹에 연루된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의 탄핵소추안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이동관 위원장이 ‘임기가 보장된 공영방송 이사와 이사장을 정당한 근거와 적법한 절차 없이 무더기 해임했고, 2인 방통위 구조로 전횡을 일삼고 보도의 자유와 독립성을 침해하여 정권보위를 위한 언론장악의 충견 노릇을 하고 있다’며 탄핵을 주장해왔다.
탄핵안은 본회의 보고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 표결처리 하도록 돼 있다. 과반인 168석을 확보한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다. 이 위원장에게 ‘방송 장악’의 책임을 묻겠다는 게 이유다. 이정섭 수원지검 2차장과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도 민주당 내 검사독재정치탄압독재위원회 산하 검사범죄대응TF(태스크포스)가 벼르는 인사들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예정했던 쟁점 법안 필리버스터를 포기하는 바람에 이 위원장등의 탄핵안 가결도 쉽지 않게 됐다. 본회의 회기내 표결할 기회잡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공언한 대로 정부·여당이 반대하는 일명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도 단독처리했다.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쌍특검법(김건희 여사·대장동 50억 클럽 특별검사법)은 이달 내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9월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를 통과한 국무총리 해임건의안, 검사 탄핵소추안도 민주당의 작품이다. 탄핵안이 가결되면, 방송통신위원회는 기능이 정지된다. 위원장 직무정지로 방통위원이 이상인 부위원장 1인만 남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이동관 체제를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자 탄핵카드를 할용하려 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이새롬 기자 |
당내에선 이 같은 ‘탄핵 남발’이 향후 총선에서 중도층 표심에 악재가 될 거란 우려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민주당은 총선을 생각하면 급한 모양이다. 총선 전 유리한 언론 지형을 구축하려면, 일단 이 위원장의 직무를 정지시켜야 한다는 데 무게가 실린 것 같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주당 관계자는 "시기가 안 좋은 건 맞는다. 또 탄핵이냐는 여론을 분명 예상하고 있다"면서도 "그래도 선거 전에 최대한 이동관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손발을 묶어 놓는 게 필요하다는 판단이 우세한 것 같다"고 말했다.
쟁점 법안의 경우도 그렇다. 특히 방송3법 개정안이 민주당으로서는 같은 맥락이다, KBS·MBC·EBS 등 공영방송 이사진 추천 권한을 학계와 직능단체에 부여하는 게 골자다. 민주당은 정치권 영향력을 줄이자는 취지라고 하지만 국민의힘은 친야권 단체의 방송 장악을 돕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반대해왔다. 탄핵과 단독처리, 민주당이 꺼내 든 카드는 국민을 무시하는 구태의연한 대여 공세의 일환에 불과해보인다. 국무위원 탄핵 추진과 쟁점 법안 강행 처리로 ‘김포 서울 편입론’과 인요한 혁신위 등으로 여권에 빼앗긴 정국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얄팍한 의도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강서구청장 보선 직후 "국정 실패에 대한 엄중한 심판으로 민주당의 승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 대표와 민주당 행보는 거꾸로인 것 같다. 여권이 '메가 서울'과 '공매도 금지'등으로 이슈 주도권을 틀어쥔 것도 민생과 국민 삶의 문제를 정확히 찔러서다. 민주당은 지난 6일 여권발 ‘메가 서울’ 과 ‘공매도 금지’ 의제에 대해 "선거 표 얻자고 미래를 버린 것" "공매도 한시적 중단은 우리 당이 먼저 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정책에 대한 분명한 입장과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선거용 포퓰리즘’이라는 한물간 주장만 하고 있다. 정책의제 선점에서 주도권을 빼앗긴 게 분명한데도 인정을 안하고 있다.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3월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정치개혁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더팩트DB |
지금 시점에서 봐도 강서 보궐 선거는 100%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한 심판이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뭘 잘해서 지지를 보낸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 외에도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국회에서의 코인 투자 등의 당내 악재들이 이 같은 현실을 웅변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에선 ‘200석 발언’ 등 오만의 병까지 재발한다. 이탄희 의원이 지난 5일 "윤 대통령의 거부권 기반을 최소한으로 축소하기 위해 (야권) 연합 200석이 필요하다"고 말하자 정동영 당 상임고문은 "수도권을 석권하면 200석 못 하리란 법도 없다"고 추임새를 넣었다.
민주당에는 ‘아전인수에 쩔은 긍정의 화신’들만 있나? ‘민심은 민주당에게 ’라는 도끼병도 이 정도면 불치병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이해찬 전 대표가 ‘20년 집권론’을 꺼냈다가 5년 만에 정권을 내놓은 일은 새까많게 잊은 모양이다. 자기 혁신에 눈감은 채 힘자랑만 한다면 내년 총선에서 준엄한 심판의 칼날이 자신들을 목을 향하게 될 뿐이다.
보궐선거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부터 몸을 낮추고 민생 문제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반면 민주당은 국정감사·예산국회에서 윤석열 정부 실정을 파헤치고 민생 예산 증액을 주도하는 정치력과 결기도 보이지 못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의 ‘인요한표 혁신위’와 ‘서울 확장론’ ‘공매도 금지’ 등의 잇단 발표에 따른 이슈 주도력에서도 밀린다. 단식 농성 후 복귀한 이재명 대표가 회심의 작품으로 내놓은 ‘3% 경제성장론’도 국민의힘의 이슈들에 가려졌다는 평가다. 그 해법이 국무의원 탄핵시도와 쟁점법안 단독처리인가?
물론 야당의 구조적 한계 때문에 이슈 메이킹에서 정부·여당에 밀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탄핵이나 '진영 진화적' 법안 밀어붙이기가 정답은 아니다. 거대 야당이라면 민생과 관련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먼저 당내 혁신을 통해 사법리스크, 팬덤, 무혁신, 일사분란으로 점철되어온 부정적 요소를 하나하나 깨부셔야 표심을 흔드는 정책의 진정성도 국민이 믿어준다. 민주당도 정부 여당 못지 않게 경쟁적으로 '국민'과 '민생'을 최우선에 내세운다. 개혁도 빼놓지 않는다. '탄핵'과 '단독처리'가 어찌 '국민'과 '민생' 그리고 '개혁'과 관련이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