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혁신안’ 수용해야
정당은 당원들의 결사체, 전 당원 투표로 혁신안 향방 결정하는 게 순리
더불어민주당 광주 권리당원모임이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 광주 현역의원들의 김은경 혁신안 수용을 촉구하고 있다./권리당원 모임 |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양자강의 앞 물결은 뒷 물결을 거스를 수 없다. 옛것과 새것의 자리바꿈이 초래하는 갈등을 얘기할 때마다 인용되는 고사성어다. 김은경 혁신안을 둘러싼 민주당의 내홍을 보면서도 문득 이 문구가 떠오른다.
민주당을 향한 지지자들의 혁신 요구는 지난해 3월 대선 패배 이후부터 빗발쳤다. 3개월 후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12곳 시도지사를 차지하고 민주당은 고작 5곳에 머물면서 ‘혁신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위기론이 더욱 거세게 일었다.
혁신에 대한 기대는 그렇게 넘쳤지만 그로부터 1년이 훨씬 지난 후에야 ‘늦둥이 혁신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0.73% 석패 의식이 혁신의 길에 걸림돌이 됐다고 볼 수도 있다. 정권은 내줬지만 의회권력의 대주주라는 미망이 민주당의 ‘혁신 로드’를 그르친 셈이다.
어떻든 그렇게 늦둥이를 보았지만 ‘잘낫네, 못났네’ 하면서 당이 분란에 휩싸였다. 얼마 전 의총에서 17명의 의원들이 발언에 나서 혁신안을 성토했다. 이 대목에서 기자는 그들에게 묻고싶은 게 있다. 도대체 그러면 어떤 혁신안을 기대했다는 말인가?
외부혁신위가 꾸려졌을 때부터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 타파는 사실상 예고된 결론이었다. 그럭저럭 모두를 만족시키는 혁신안을 기대했다면 외부혁신위를 출범부터 가로막아야 했을 것이다. 기존 구성원들에게 혁신이 뼈 때리는 아픔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혁신이 아닐 것이다. 민주당은 ‘좋은 약은 쓰다’는 격언을 되새겨야 할 때이다.
김은경 혁신위는 출범 초 크게 두 가지 슬로건을 내걸었다. 윤리정당과 민주적 정당이라는 기치였다. 윤리정당 목표는 불체포 특권 포기로, 그리고 민주적 정당 기치는 권리당원과 대의원이 1인 1표 등가성을 갖는 대의원제 폐지로 가시화 됐다.
대의원제 폐지를 요구하는 당원들의 주장은 그동안 대의원제가 당원들의 대의기구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불만에서 비롯됐다. 당원의 뜻 보다는 현역의원인 지역위원장들이 가지고 노는 주머니 속 공깃돌에 머물러있었기 때문이다.
대의원제 폐지가 겉으로 드러난 갈등의 양상이지만, 내막은 그렇지가 않다. 스스로 드러내놓고 말을 할 수 없을 뿐이지 의원 성적평가에 대한 반발이 실상의 속내다. 김은경 혁신안은 하위 10% 현역의원들에게는 공천 경쟁에서 40% 감산 페널티를 줘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는 불만에 대해 혁신위는 그 정도 불이익을 줘야 정치신인들과의 경쟁구도가 공정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열심히 일하지 않은 현역의원들로선 경기를 일으킬 주문이긴 하다. 물론 이들의 이 두려움에 대해 지지들은 이런 말을 되돌려주고 싶을 것이다. 그동안 의원 노릇 잘 했다면 걱정할 일 뭐가 있는가?
중앙당의 내홍과는 달리 혁신안을 지지하는 당원들의 반응은 뜨겁다. 혁신안 이행 청원이 넘치고 있다. 민주당 심장부인 광주에서도 지난 17일 권리당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원들은 혁신안을 즉각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현역의원 70% 물갈이 여론으로 드러난 당원들의 요구를 김은경 혁신위가 정확히 꿰뚫어 봤다는 얘기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정치인들의 욕망은 늘 범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격랑에 배가 깨져 난파선이 될지라도 내 구명정 하나 껴안고 있으면 된다는 무모한 아집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혁신안을 둘러싼 이번 민주당의 풍랑은 전례 없이 달라 보인다. 거의 대다수의 당원이 혁신안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명정 던져줄 이가 없다는 얘기다.
정당은 당원들의 결사체다. 당 대표도, 국회의원도, 권리당원도, 평당원도 모두가 당원이다. 1인 1표의 민주주의 평등선거의 원칙에 따라 전 당원 투표를 통해 혁신안의 향방을 결정짓는 게 순리일 듯싶다. 그렇지 않으면 당이 분열의 위기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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