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재난은 네 탓' 무한 반복…이러다 더 큰 재앙 온다
입력: 2023.08.08 00:00 / 수정: 2023.08.08 00:00

잼버리 사태, 우리나라 사회재난 취약성 보여준 종합판
'준비 부족→재난 발생→남 탓' 반복에 사회재난 되풀이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부실한 준비와 운영, 살인적인 폭염 등으로 국제적으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일 전북 부안군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야영지로 구급차가 진입하는 모습. /이동률 기자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부실한 준비와 운영, 살인적인 폭염 등으로 국제적으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일 전북 부안군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야영지로 구급차가 진입하는 모습. /이동률 기자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우리나라에 사회재난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전북 부안군 새만금에서 열리고 있는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이하 잼버리)와 관련한 재난, 폭우로 인한 재난, 이태원 참사 등 지난 1년간 여러 사회재난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여러 전조가 있었고, 이를 수습하고 더 큰 사고를 대비할 책임이 있는 정부와 정치권은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책임론을 두고 '네 탓'을 합니다. 이러다 보니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도 이뤄지지 않고, 재발방지책 마련도 제대로 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특히 '국제적 망신'이라는 혹평을 받는 이번 잼버리 행사는 우리나라가 사회재난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종합판입니다. 야영지의 열악한 시설, 폭염에 온열질환자 및 벌레 물림 환자 속출, 100여 명이 넘는 코로나19 확진자 및 성범죄 사건 발생, 무더위 속 상한 음식 제공 등 부실 준비·운영의 극치를 보여줬습니다. 뒤늦게 정부, 지자체, 기업들이 총력 대응에 나서면서 행사 초기보다 상황이 나아졌지만, 이번엔 태풍에 발목이 잡혀 파행 운영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2023 잼버리가 열리고 있는 새만금은 박근혜 정부 시설인 2015년 9월 선정된 장소이며,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년 8월 유치가 확정됐습니다. 이후 6년간 문재인·윤석열 정부에서 준비해 8월 2일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개영식이 열렸습니다. 행사 개막 전까지 사용된 사업비는 1171억 원입니다. 연도별 집행금액을 보면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156억 원, 정권교체기인 지난해 398억 원(윤석열 정부 2022년 5월 10일 출범), 윤석열 정부 2년 차인 올해 617억 원이 투입됐습니다.

행사 유치 과정, 준비 기간, 예산집행 시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문재인·윤석열 정부 모두 '부실 준비'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양측은 책임론에 대해 '네 탓'만 하고 있습니다. 여권은 문재인 정부 시절 유치가 확정돼 준비한 행사라고 네 탓을 하고 있고, 야권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15개월간 뭘 했냐며 네 탓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잼버리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인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1년 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잼버리 준비 문제를 지적하는 민주당 의원 질의에 "차질 없이 준비할 것"이라며 "태풍, 폭염에 대한 대책도 다 세워놓았다"고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던 게 회자되기도 했고, 이번 잼버리 행사 중 드러난 여러 문제점이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새만금개발청이 작성한 '2023년 세계 잼버리 준비 및 새만금 투자 활성화' 보고서에 담겨 있었던 것도 언론보도로 드러났습니다.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진행되고 있는 지난 5일 전북 부안군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야영지 인근 전망대에서 시민들이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야영지를 바라보고 있다. /이동률 기자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진행되고 있는 지난 5일 전북 부안군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야영지 인근 전망대에서 시민들이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야영지를 바라보고 있다. /이동률 기자

이런데도 자기 진영의 책임은 언급하지 않고, 남 탓하기에 바쁜 정치권의 현실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끼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런 정치권의 대응이 반복되고 있어 '정치 불신'을 넘어 '정치 혐오'로 이어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를테면 2년 연속 발생한 장마철 폭우 인재(人災), 지난해 10월 발생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도 잼버리 대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회재난이 발생하면 일단 수습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수습이 완료된 후에는 원인을 규명하고, 재난을 방치한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후속조치가 있어야 유사한 다음 재난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런 기본적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 재난은 되풀이되고, 더 큰 재난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이는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어느 정도 증명이 됐습니다. 이 법칙은 큰 재해는 우연히 또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반드시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나타나고, 그것을 방치할 때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하인리히는 산업재해 사례 분석을 통해 이 법칙을 발견했는데 여러 사회재난에도 이 법칙은 통하고 있습니다.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를 잘 살펴 원인을 파악하고, 잘못된 점을 시정하면 대형사고나 실패를 방지할 수 있지만, 징후가 있음에도 이를 무시해 이후 큰 사고가 발생한 것을 우리는 여러 사례에서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발생한 일은 되돌릴 수 없지만 이제라도 비슷한 재해, 더 심각한 재해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정부와 정치권이 '네 탓'으로 책임을 떠넘기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시스템대로 원인과 문제를 잘 살피고, 진영을 떠나 책임을 철저히 묻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 시행해야 합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잼버리 사태 후속조치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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