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3일 서울 용산구 대한노인회 중앙회를 방문해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에게 사과 후 면담을 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평균수명이 길어져 고령사회가 되자 ‘노인은 일은 안하고 밥만 축낸다’는 인식이 급격히 퍼진다. '고려장' 하는 풍조도 만연해진다. 노인 복지를 축소하거나 없애는 정책마저 실시된다. 70세 이상 노인에게 약값과 치료비 지급을 제한하고 100세부터 무료 의료 서비스는 제공되지 않는다. 70세 이상은 공공장소에 출입이 제한된다. 60세 이상은 직업 활동이 제한된다. 자녀의 노부모 지원도 물론 금지다.

‘뇌’ ‘개미’등으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소설 ‘나무’에 나오는 18개 단편 중 하나인 ‘황혼의 반란’이 그려낸 가상의 사회상이다. 이는 곧 닥칠 현실일지도 모른다. 천재 작가의 의도는 지난 세대를 공경하기보다는 무시하는 세태를 비판하고자 한 게 아닐까란 생각부터 앞선다. ​우리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되는 나라 중 한 곳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3년 뒤인 2026년에는 노인의 인구가 20%가 되는 초고령화 사회가 된다. 2036년에는 49%에 이를 전망이다. 2명의 젊은이가 1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현실이 눈앞이다.

사회를 안정시키며 적절한 대처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젊은 층들이 계승해가면서 발전시켜 나갈수 있도록 만들어준 존재는 노인, 이른바 지난 세대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고 ‘모두’가 있기에 사회가 안정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노인들도 젊은 시절이 있고 젊은 세대 역시 늙는다. 노인들은 그러한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기여한 존재로서 공경받고, 경험 많은 선배로서 자아성찰을 목표로 하는 성숙한 존재이기도 하다.

현실은 어떤가? 몸을 가누지 못한다는 이유로 요양원으로 떠밀린다. 노인병으로 지급되는 의료비가 전체 의료비의 36%를 차지하고, 매년 70%씩 가파르게 급상승하고 있다. 혹여 국민건강보험이 바닥난다면 의료비 지급이 제한되고, 머잖아 안락사가 허용될지 모른다는 가설은 기우이기만 한 걸까.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지만 항상 잘못된 비유나. 실수, 곡해. 오해, 논란, 사죄, 사과 등으로 포장되고 마무리되는 수순을 밟는 정치권발 노인비하 언어폭력을 언제나 덮고 마무리하는 것이 정답일까.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오른쪽)이 3일 서울 용산구 대한노인회 중앙회에서 노인 비하 발언 논란으로 사과 방문한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에게 사과를 받고 면담을 하는 중 김 위원장의 사진을 손으로 때리며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국회에서 절대 다수를 점하거나 수권의 경험이 있는 거대정당의 지도자급 인사가 발화자였는데도 그래야만 할까. 지금은 더불어민주당이라는 간판을 걸고 있다. "60세 이상은 투표하지 말고 집에서 쉬시라(정동영)" "50대에 접어들면 뇌세포가 변해 사람이 멍청해진다(유시민)"등의 발언이 새삼스럽다. 설화로 치부하고 가볍게 용서해주는 것은 아닌지, 이전 세대를 포함한 국민들 다수의 너그러움이 놀랄 뿐이다. 터질 때마다 같은 집단이고 발화자만 바뀌었다. 어찌 보면 '의도를 가진 상습적' 도발이 아니었나 하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형법의 저촉을 받는다면 상습성으로 가중처벌될 사안이다.

김은경 민주당 혁신위원장의 발화에서 사죄에 이르기까지 과정도 과거와 같은 전철이다. 발언 수위만 놓고 보면 과거 사례보다 훨씬 강해 보인다. 다만 사과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진정성은 오히려 빈약해 보인다. 의도가 왜곡됐다고 변명하고 주장하고 반발하다가 뒤늦게 사과했지만 그 사과를 받는 국민은 총선을 앞둔 코앞의 이익 때문에 마지못해 하는 ‘엎드려 절받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민주당은 과거에도 나이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드러내는 듯한 여러 발언을 했고, 때문에 선거를 그르친 경험이 있다. 이번에는 당을 일신해야할 혁신위마저 쇄신하기는커녕 여기에 동승하고 말았다. 이런 태도가 민주당의 태생적 DNA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발언의 의도를 그들의 햬명대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다 해도 ‘여명(남은 여생) 비례 투표’는 ‘깜놀’의 수준을 한참 넘어선다.

김은경 위원장이 "둘째 아들이 22살이 된 지 얼마 안 됐는데 중학교 1~2학년일 때 ‘왜 나이 든 사람들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느냐’"며 "각자 또래의 나이로부터 여명까지 해서 비례로 투표해야 한다’는 발언은 나이가 지긋한 세대에게는 수치스럽고 공포스럽기조차 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 발언하고 있다./국회=이새롬 기자]

물론 제정 로마시대에 군복무를 한 베테랑 등에 참정권 혜택을 준 적이 있으나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다. 그런데도 "되게 합리적이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1인 1표'라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맞는 말이고,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1대 1 표결을 해야 하느냐"라는 김 위원장의 부연 설명은 ‘멘붕 중의 멘붕’이다. 김 위원장이 청년 표심을 의식해서 그랬고 청년의 정치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표현의 잘못이라고 해도 뒤늦은 사과로는 한참 모자란다. 국민들이 너무 너그러운 탓인지 모르겠다.

김 위원장은 3일 대국민 공식사과 이후 대한노인회까지 찾아 '여명 투표' ‘노인 비하’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박광온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도 대한노인회를 찾아 사과한다. 하지만 휴가를 떠난 이재명 대표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민주당 혁신위의 역할에 대해 민주당내에서도 회의적이다. 강도의 차이만 있지만 '이재명을 위한 혁신위'로 태생적 한계를 감안해도 선을 한찬 넘었다는 지적이다. '혁신위의 혁신' 수준을 넘어서는 '무용론'도 나온다다. 곡해나 오해라 해도 이 정도 발언이라면 위원장 퇴출은 물론이고 혁신위를 없애는 게 맞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나라마다 노인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정년 퇴임 나이를 높이는가 하면 일정 직업군에서는 노인채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풍부한 경륜을 가진 노인들의 두뇌를 새로운 지식창조와 생산 활동에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노인은 소비계층이고 젊은이는 생산계층이라는 등식을 깨고, 노인을 미래사회의 큰 가치로 보는 관점의 변화가 우선돼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미래판 고려장'을 걱정하는 지금의 문제를 푸는 열쇠가 아닐까 싶다. 민주당은 민주사회의 공당이길 바란다면 새겨듣길 바란다. 특히 이재명 대표와 지도부부터 각성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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