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길 잃은' 정치, '가시밭길' 국민
입력: 2023.07.16 00:00 / 수정: 2023.07.16 00:00

"민주당 게이트" vs "김건희 로드 국정농단"...여야 정쟁 비화
서울~양평고속도로 백지화 논쟁 피해는 국민 몫


서울~양평고속도로를 놓고 여야 정치권이 연일 뜨거운 정쟁을 벌이고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더불어민주당의 김건희 여사 특혜 의혹 제기에 사업 자체를 백지화 선언하면서 파문이 확산했다.
서울~양평고속도로를 놓고 여야 정치권이 연일 뜨거운 정쟁을 벌이고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더불어민주당의 김건희 여사 특혜 의혹 제기에 사업 자체를 '백지화' 선언하면서 파문이 확산했다.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여기 두 갈래 길이 있다. 지도에는 분명 외길인데 눈앞에 보이는 건 두 갈래 길이다. 왼쪽? 오른쪽? 선택의 순간이다. 만약 선택의 전제가 삶과 죽음이라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유명하고 가장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품인 '햄릿'의 유명한 대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독백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나 자동차 따위가 지나갈 수 있도록 땅 위에 낸 일정한 너비의 공간을 '길'이라고 한다. '길'은 사람과 동물, 자동차, 비행기, 배 등이 다니는 수단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더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민족대백과사전을 보면 '길'을 세 가지 뜻으로 정리했다. 첫째는 교통수단으로서의 길, 둘째는 방도를 나타내는 길, 셋째는 행위의 규범으로서의 길이다.

'길을 잃다.' 여기서 길을 잃다는 공간으로서의 길로 읽히지만, 삶의 순간으로 보자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인생의 길을 잃었다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길'을 한자로 도(道)또는 로(路)로 쓰는 데 이 경우다. 도(道)는 올바르게 가야할 방향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는 사상이나 정치를 이야기할 때 사용한다. 왕도정치(王道政治), 치도(治道) 등 정치에 적용돼왔다.

지난 13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의원들이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 참석해 서울~양평고속도로 관련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피켓과 함께 구호를 외치는 모습. /이새롬 기
지난 13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의원들이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 참석해 서울~양평고속도로 관련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피켓과 함께 구호를 외치는 모습. /이새롬 기

요즘 우리 정치권도 때아닌 '길' 논란으로 뜨겁다. 사람과 교통의 왕래를 돕는 새로운 '길'(道, 路)이 백지화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길을 낸다는 것은 이동의 불편함을 없애고, 먼 거리를 돌아가며 버리는 시간과 돈을 절약하기 위해 가장 가까운 거리로 단축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새로운 길, 서울~양평고속도로에 정치가 개입되면서 물거품이 될 처지다. 여야는 특정인을 거론하며 '게이트'라지만, 진영 간 갈등으로 보는 시각이 상당하다.

'서울~양평고속도로 사업' 논란은 국토교통부가 2년 전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양서면)을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 일가가 소유한 땅 근처(강상면)로 하는 변경안을 내놓으면서 불거졌다.

원희룡 장관은 야권에서 서울~양평고속도로가 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 의혹을 제기하자 백지화를 선언했다. /이동률 기자
원희룡 장관은 야권에서 서울~양평고속도로가 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 의혹을 제기하자 백지화를 선언했다. /이동률 기자

더불어민주당은 김 여사 일가 소유 땅 근처로 변경된다는 점에서 '김건희 로드 국정농단'으로 규정하며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그러자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노선 검토뿐만 아니라 사업 자체를 전면 중단하고 백지화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민의힘도 민주당 소속 정동균 전 양평군수 일가가 예비타당성조사 발표 4개월 전 원안의 종점 인근 땅 250여 평을 구입했다며 역공에 나섰다. 또, 김부겸 전 총리, 유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전임 문재인 정부 인사가 고속도로 노선 인근 땅을 보유했다는 언론 보도를 인용하며 "민주당 게이트"라고 규정했다.

여야 정치권에서 김 여사와 문재인 정부 인사들을 거론하고 원 장관이 백지화를 선언하면서 서울~양평고속도로는 갈 길을 잃고 말았다. 그야말로 기로(岐路)에 놓였다. 정치가 도의(道義)를 잃고 헤매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그리고 군민의 몫이 됐다. 국민은 가시밭길 험로를 걸어가라는 격이다.

14일 국민의힘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간사인 김정재 의원이 서울~양평고속도로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통과한 원안 노선 종정 jc인근인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대아교회에서 지역 주민들과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양평=이새롬 기자
14일 국민의힘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간사인 김정재 의원이 서울~양평고속도로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통과한 원안 노선 종정 jc인근인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대아교회에서 지역 주민들과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양평=이새롬 기자

정치가 이처럼 양 극단의 정쟁으로 치닫는 이유도 결국은 '소통'의 부재 때문이다. 소통은 상대와 대화가 통할 때다. 불통은 소통의 길이 막힌 것이다. 지금 상황을 볼 때 여야가 외길을 손잡고 다정하게 걷는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평범한 사람들은 인생의 길에서 늘 고민한다. 중요한 지점마다 그렇다. 고민의 이유는 단순하다.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최상의 결과를 얻기 위해 갈림길에서 선택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결과가 후회든 기쁨이든 온전히 본인의 몫이 된다.

정치는 개인이 양 갈래에서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와는 분명히 다르다. 개인이 아니라 국민의 삶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지층을 위한 길이 아니라 다수의 국민을 위한 길을 걸어야 한다. 또는 길을 잃고 헤매는 국민을 위해 새 길을 만들기도 해야 한다. 고단한 일이지만 이것이 정치인의 길이다. 그런데 이번 서울~양평고속도로 백지화 논란을 보면 우리 정치는 길을 잃었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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