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보존과 생존‘을 리더십의 기본 프레임으로 보면 안 돼
민주당의 위기는 크게 3가지... 윤리적 덕성의 부재도 문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모두 발언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리더십이 벼랑 끝에 섰다. 리더십의 위기는 복합적이다. 갈수록 커지는 ‘사법 리스크’에 ‘방탄 프레임’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들어 ‘2021년 전당대회 송영길 전 대표의 '돈봉투 의혹’과 김남국 의원의 ‘코인 논란’이란 악재에다 이래경 혁신위원장 임명 파문까지 겹치면서 설상가상에 놓였다. 여기에 이 대표와 지도부의 잇단 뒷북 조치와 어정쩡한 행보는 위기를 더욱 키워가고 있다는 게 정치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특히 이래경 혁신위원장 인선 실패는 가뜩이나 도덕성 및 신뢰 위기에 봉착한 민주당을 더욱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 대표의 발언대로 진정 무한 책임을 지겠다면, 왜 이런 납득하기 힘든 인선이 이뤄졌는지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특히 짚고 넘어갈 건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인선 과정이다. 이 대표는 이번 인선을 발표 전날 저녁에야 최고위원들에게 알렸다고 한다. 후보로 거론된 대부분의 인사가 제안을 거부하는 등 심각한 구인난이 일차적 원인이었다고 해도, 기본적인 검증과 의견 수렴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건 큰 문제다.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인선 때마다 지적해 온 지점이다.
‘개딸’에, ‘재명이네 마을’에, 처럼회에, 7인회 등등, 강성 지지층에 휘둘리고 어줍잖은 온정주의적 태도로 비치는 행보는 그동안 분열 조짐을 보인 ‘친명(親이재명)’계와 ‘비명(非이재명)’계 공히 ‘지금은 위기’라고 동의하는 대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거대야당으로 다수의 ‘입법 권력’을 갖고 입만 열면 강조해온 민생 정책과 경제 비전도 구두선에 불과해 보인다. 당내에서 다수의 여론은 아니지만 '대표 사퇴론'은 물론이고 지도부 전원이 총사퇴해야 한다는 ‘지도부 사퇴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확대간부회의가 열린 가운데, 최근 전 천안함장에 대한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권칠승 수석대변인의 자리가 비어 있다./이새롬 기자 |
이 대표의 사퇴론에 대해선 계파별로 생각이 확연히 다르지만 비명계는 물론 중도로 분류되는 현역 의원에 원외 청년 세력까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우려가 힘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민주당의 위기를 크게 세 가지로 보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첫째가 '내로남불'에서 비롯된 자정 능력 및 도덕성의 상실이다. 혁신과 자정 능력의 무력화로 이어진 끊임없는 방탄 이미지 고착화도 악재다. 이 두 가지 악재의 결과에서 커져가는 내년 총선 승리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당의 이런 위기가 확대 재생산 쪽으로 물꼬가 잡히면서 이 대표와 지도부는 물론 민주당 전체를 혼돈과 혼란으로 몰아넣을 거라는 것은 상상 속 가설만이 아니다.
그동안 이 대표 리더십에 대해선 여러 각도에서 비판이 제기돼 왔다. 이 대표는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당대표에 잇따라 출마해 당선됐다. 대선 후보로 나서 국민 절반에 가까운 지지를 받고 강력한 당내 세력을 구축했기에 지지자들에게는 ‘검찰 정권’의 부당한 탄압에 맞서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자 윤석열 정부에 맞설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을수도 있었다. 하지만 ‘기소 시 당직 정지’를 규정한 당헌 80조 개정 시도 등으로 사법리스크에서 비롯된 '방탄 이미지'를 고착화하는 등 주요 순간마다 당보다 대표 개인만을 앞세웠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국민들이 한국의 정당정치에 대해 환멸과 불신을 느끼거나 후진성을 입에 올리면 대부분의 정치학자들은 적지않은 한국 정치지도자들이 내면화된 윤리적 덕성의 부재부터 거론한다. 여전히 자기보존과 생존의 프레임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치적 과정의 중요성이라든가 행위의 방식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는 얘기다. 복지라든가 경제민주화 같은 지향하는 기본 프레임은 뒷전이고 정치권력의 우위 선점을 위한 자리싸움에 머물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들어 더욱 심화하는 진영 논리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상당수 국민들의 눈에는 언급된 민주당의 위기들이 한국 정치에 대한 환멸과 불신 및 후진성을 곧장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비친 탓이다. 한국 정치지도자의 고질적인 부정적 문제점도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방탄, 이로 인한 도덕성 상실과 자정능력의 무력화 우려 등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결국 민주당 위기, 리더십 위기 또는 실종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물론 여당의 정치 행태도 그리 선진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만 여당의 경우엔 이 정도는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을 받는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두번째 자진출석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박헌우 기자 |
이재명의 민주당을 보고 있노라면 근대 정치의 근간이 됐던 마키아벨리의 ‘윤리와의 단절’의 시절로 되돌아간 듯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에서 윤리는 필요에 따라 배제할 수 있으며 ’자기 보존과 생존‘을 기본 프레임으로 봤다. 이게 나만의 생각일까. 민주당의 침묵하는 다수의 중도층과 친문 세력은 ‘이재명 리스크’보다 ‘대안 부재’라는 불확실성을 택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도 다름 아니다. '8월 설'이 나도는 다음 번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닥친다면 그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눈부신 발전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윤리에 기초한 덕성이 정치 리더십의 근간이 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정치 리더십은 ‘실천적 지혜’, 즉 철학적 개념의 ʻ프로네시스ʼ(Phronesis)를 기본 프레임으로 해 ‘공동체 행복’ ‘공동의 이익‘ 추구를 전제로 한다. 당내 ‘소통의 정치’가 출발점이 된다. 민주주의가 윤리적 덕성을 기반으로 공동의 선과 목적을 위해 가는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목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표의 경우로 국한해 '사법 리스크'나 '리더십 위기' 등 현 상황은 논외로 하고 거대 야당의 차기 강력한 대선 후보라는 면만 봐도 그렇다. 정치는 사실이 아니라 인식의 영역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국민이 어떻게 바라보고 믿는지가 중요하다. 한국의 미래를 맡길 강력한 정치지도자로 거듭 나려면 정치 사회의 미래 비전만 행복하게 짤 것이 아니다. 우선 자신의 정치적 행위 자체의 성격도 행복이라는 윤리 정치적 프레임 속에 놓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정치적 리더십에서 ʻ좋은 삶ʼ을 위한 목적의 설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적에 부합하는 정치적 행위의 양태와 양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대표 리더십은 위기가 확실히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