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재의 왜들 그러시죠?] 민주당, 국회의원 친위대 ‘대의원제’ 폐지해야
입력: 2023.04.28 00:00 / 수정: 2023.04.28 00:00

지역위원장, ‘권리당원 60명=대의원 1명’ 불공정 구조 활용해 당원 의사 결정 ‘좌지우지’

민사모(민주당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이 25일 부산시 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의원 제도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더팩트 DB
민사모(민주당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이 25일 부산시 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의원 제도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더팩트 DB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며칠 전 지역 시민단체가 주최한 행사장에서 민주당 열성당원으로 정평이 난 후배를 만났다. 그와 평소 친분 관계가 돈독했던 지역구 국회의원의 안부를 물었더니 입에서 대뜸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자신의 대의원직을 박탈했다는 게 이유였다.

까닭을 캐물었더니, 총선이 가까워지니까 그동안 충성도가 의심스러운 대의원들 물갈이 차원의 조치라는 얘기였다. 지난해 지방선거 구 의원 공천에 이의를 제기했던 것이 아마 불충의 원인이 된 듯싶다고 말했다. 왜 주군의 심기를 건드렸느냐며 농을 치고 헤어졌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당원의 대의 조직인 대의원 체제가 그렇게 허허로운 것이었느냐는 허망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송영길 돈봉투 살포 사태가 대의원제 폐기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미리 결론을 말해두자면 기자의 견해로 폐기가 맞다고 본다. 국회의원에게 돌린 고작 몇 백만원 봉투가 전당대회 승패에 영향을 끼치는 동기가 될 수 있는 것은 결국 대의원제라는 시스템에 숨어있는 비민주적 독소 때문이다.

권리당원 중에서도 핵심 위치에 있는 대의원은 사실상 국회의원인 지역위원장이 점지한다. 선임 과정이 그렇기에 대의원들은 국회의원의 친위조직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당내 경선 등 주요 의사결정이 있을 때마다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검은 지령’이 이들에게 내려진다. 이 지령은 절대적 효과를 지닌다.

대의원 1명의 표가 권리당원 60명의 표와 등가성을 갖는 불공정 구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결국 이 구조를 활용해 당원 의사결정을 손쉽게 휘두른다. 웬만해선 대의원들도 이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그들 또한 지역위원회 당직, 구의원, 시의원 등 보다 높은 단계로 오르기 위한 정치적 욕망을 지니기 때문이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민주당은 지금 변화의 시간을 맞고 있다. 국회의원 중심의 정당이 당원 중심의 정당으로 가는 언덕을 넘고 있다. 물론 수월한 발걸음은 아니다. 벅차고 경사는 가파르다. 뻑뻑한 밀림을 헤쳐 나가 듯 장애도 많다.

수박‧개딸 논쟁, 대의원제 폐기 논란 등 분란도 실인즉 그 변화의 국면에서 빚어진 마찰과 갈등의 소산이다. 송영길 돈봉투 사태도 어쩌면 그 격렬한 변화의 소용돌이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관문 일는지 모른다.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을 하야시킨 지난 촛불정국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효능을 실감했다. 정당 또한 그 효능감의 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 이를테면 일정한 정견을 지닌 시민이라 일반화 할 수도 있는 불특정 다수의 당원들은 이제 정당의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싶어 한다. 이 때문에 대의원제는 이제 당원 중심의 정당 운영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인식되고 있다.

당원 중심 정당 운영은 정치교체와 세대교체 차원에서도 꼭 필요하다. 현역 의원이 자신이 심은 충성스런 대의원들을 통해 경선 과정에 막중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제도 속에서 참신한 정치 신인의 공천 도전은 철옹성을 뚫는 일에 다를 바가 없다. 대의원은 고사하고 권리당원을 자신의 지지자로 끌어오는 일도 난망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법학자 정만희 교수는 그의 저서 ‘정치개혁을 위한 제언’(세종출판사, 2004)에서 정치 개혁과 현실 사이에는 늘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음을 전제하며, 정당이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개혁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모든 당원이 동참하는 개혁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혁의 지속성을 위한, 모든 당원이 동참하는 개혁을 위해 민주당은 지금 당장 대의원제를 폐기해야 한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forthetru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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