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 '천원의 학식'이 준 선물... 尹 정부 첫 여야 협치?
입력: 2023.03.31 00:00 / 수정: 2023.04.03 22:07

국민소통과 정책경쟁...여당인 국민의힘이 먼저 행동에 옮겨
거대 야당 민주당이 화답... 민주 정치의 시작이자 전환점 기대


천 원의 아침밥 사업을 통해 교내식당에서 대학생들이 아침을 먹고 있다./공주시
'천 원의 아침밥' 사업을 통해 교내식당에서 대학생들이 아침을 먹고 있다./공주시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1000원에 감상할 수 있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의 ‘천원의 행복’ 프로그램은 올해로 17년째다. 2007년 첫 선을 보인 이래로 40만 명에 육박하는 시민이 관람한 '천 원의 행복'은 세종문화회관의 대표적인 사회공헌, 문화나눔 사업이다. 파격적인 티켓 가격은 물론이고 양질의 공연에 공연장 문턱을 낮춘 장수 프로그램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지금 1000원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살펴보자. 껌 한 통, 로또 복권 한 장(구좌) 정도를 빠듯하게 살 정도다. 단팥빵 크림빵은 물론이고 우유100mm, 삼각김밥도 구입 엄두를 못 낸다.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적지 않으나 이 때문에 ‘1000원 행정’이 생기지 않았나 부질없는 상상도 해본다. 광주 서구는 양동시장에 고령자들이 시간제로 일하는 ‘천원 국시’집을 연다. 노인 일자리를 만들고 시장도 살려 보려는 시도다. 국수 한 그릇에 3000원이지만 시장에서 장을 본 사람들에겐 1000원만 받는다. 경북 영천시와 경주시는 교통이 불편한 지역 주민에게 ‘1000원 행복 택시’를 운영하고 있다. 영천시 임산부는 출산 후 1년까지 택시 요금이 1000원이란다.

이은철&이혜원이 부른 ‘천 원으로 뭐 할까’ 라는 제목의 동요 같은 노래가 있다. ‘1000원으로 뭐 할까’로 시작하는 노랫말은 ‘컵라면 간식 하나 먹으면 되지’라고 이어진다. 틀렸다. 온라인 특별판매를 한다 해도 컵라면 1개는 1000원이 넘는다. 재작년에 나온 노래인데 벌써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2절의 ‘따뜻한 식사 한 끼 보내면 되지’라는 가사는 틀린 것 같지만 맞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핫한 ‘1000원 학식’덕분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참여대학들이 추진해온 '천 원의 아침밥' 사업은 고물가시대인 요즘 온기 넘치는 정책이다. 주머니 사정이 뻔한 대학생들로는 살기 팍팍한 고물가시대에 정말 따뜻한 온정이 넘치는 학식(학교식당) 가격일 수 밖에 없다. 매일 아침 전국 곳곳의 대학교 구내식당은 1000원에 아침을 해결하려는 학생들로 붐빈다고 한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천 원의 아침밥’ 사진들을 보면 잡곡밥과 계란국에 돼지불고기 묵무침 콩나물 김치까지 왠만한 집밥보다 낫다 싶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김대표 다음날 오전 경희대를 찾아 ‘1000원의 아침밥’ 현장을 점검하고 학생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남용희 기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김대표 다음날 오전 경희대를 찾아 ‘1000원의 아침밥’ 현장을 점검하고 학생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남용희 기자

학생이 1000원을 내면 정부가 1000원을 보태고 나머지는 학교가 부담한다. 정부 보조 없이 교수와 직원들이 모은 장학금으로 1000원에 아침밥을 주는 대학도 있다. 학생 수와 관계없이 매일 아침 1000원 식당을 여는 곳도 있다. 학교 재원으로 운영한다니 부럽기 그지없으나 특별한 경우다. 아침 한 끼 먹으려고 긴 줄을 선 학생들이 안쓰럽기도 하다.

올해는 전국 41개 대학 재학생 68만 4867명이 대상이다. 68만여 명으로 지원 대상을 늘린 이 사업에는 수도권 11개교와 충청권 6개교, 강원권 4개교, 영남권 12개교, 호남 8개교가 선정됐다. 이 지점에서 미참여 대학 재학생들의 불만이 나온다.

대학생이 포함된 우리나라 20대의 아침밥 결식률은 53%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다. 아침밥을 거르는 게 습관일 수 있다. 밥값 영향도 적지 않다고 본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가 대학생 2076명을 대상으로 최근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56.1%는 식비 지출 부담을 호소했다. 77.0%는 최근 식비부터 줄였다고 한다. 전면적인 정책 확대는 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경남도는 전국 최초로 대학생 학식 지원 사업 정책을 도입하기로 했다.

주역(周易)에 보면 '궁즉변(窮卽變)변즉통(變卽通)통즉구(通卽久)'라는 말이 있다. 극한 대립으로 일관해온 우리 여야를 말하는 것 같다. 그들은 어려울때(窮) 변화(變)를 20대의 소통(通)에서 찾았고 확대 등으로 오래갈(久)심산이다. 이게 진정한 협치고 민생 아닌가?

지지율 부진으로 경고등이 켜진 여당인 국민의힘이 먼저 행동에 옮겼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28일 이른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를 주요 타깃으로 대학교 방문 및 '치맥' 회동에 나섰다. 효과는 아직 미지수지만 소통과 협치의 단초가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의 ‘1000원 학식’ 정책 확대 제안을 환영한 김민석 민주당 정책위 의장./더팩트DB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의 ‘1000원 학식’ 정책 확대 제안을 환영한 김민석 민주당 정책위 의장./더팩트DB

김 대표는 그날 오전 경희대를 찾아 ‘1000원의 아침밥’ 현장을 점검하고 학생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그러자 당정은 지원 예산을 현행 7억 2700만원에서 2배 이상 증액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김 대표는 "식사하는 문제만큼은 국가가 책임지는 방식으로 계속 확대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참여 학교를 현재 41개교에서 66개교로, 지원 대상도 69만명에서 150만명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거든다.

이에 더불어민주당도 격하게 나선다. 김민석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민의힘 김 대표의 ‘1000원 학식’ 정책 확대 제안을 환영했다. 참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다. 한술 더 떠 지방자치단체 예산도 활용해 모든 대학에 해당 사업을 제공하자고 국민의힘에 제의한다.

그는 "기초지방자치단체가 500원, 광역지방자치단체가 500~1000원, 중앙정부가 1500~2000원을 지원하면 재정난을 겪는 대학들이 훨씬 더 참여하기 용의할 것"이라며 "민주당은 우선 야당 소속 광역지자체 및 기초지자체와 협의해 예비비를 집행하고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는 방식을 추진하겠다"까지 강조했다.

내 눈에는 윤석열 정부 수립 이후 여당 먼저 야당 먼저의 국민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경쟁은 처음인 것 같다. 여야가 이를 계기로 MZ세대를 넘어 모든 국민들에게 경쟁적으로 이같은 따뜻한 마음을 갖고 정치를 한다면 정치권에서 사라졌던 민주적 정당 정치의 시작이고 한국 정치의 전환점이 되라고 본다. ‘우리들의 작은 정성들이 아이들의 미소가 될 거야‘라는 말미의 노랫말처럼 정치인들의 노력으로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아지는 날을 기대해본다.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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