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하락은 '방탄'도 영향, 박지현의 '사즉생'도 고려해야
우리가 옳다는 생각이 만장일치라도 ‘절대 가치’ 아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 발언하고 있다./이새롬 기자 |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을 위한 오는 27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민주당이 따로 당론을 정하지 않고 자율투표를 하되 ‘부결’에 힘을 모으기로 결정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3~4월로 전망되는 기소 국면까지 ‘체포동의안 정국’에서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최근의 민주당 내부 상황보고 있자면 ‘텍사스에 살던 한 가족의 얘기’가 떠오른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사위의 방문에 아버지는 텍사스주 북서부의 도시 애빌린으로 외식을 나가자고 제안했고, 사위와 딸, 부인은 모두 동의해 길을 나선다. 가족들은 뜨거운 햇살 아래 에어컨도 없는 차를 타고 애빌린을 향한다. 왕복 3시간이나 걸려 애빌린에서 ‘형편없는’음식을 먹고 집으로 돌아온 가족들은 하나 둘 불평을 털어놓는다. 어느 누구도 애빌린에 가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영 전문가인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영학과 제리 B. 하비(Jerry B. Harvey)교수가 1974년 발표한 자신의 논문인 '애빌린의 역설(Abilene paradox)과 경영에 대한 다른 고찰'에서 주장한 ‘애벌린의 역설’이라는 이론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이야기다. 아무도 원치 않는 일이었지만 암묵적인 합의에 따라 그 일을 목표로 삼고 추진하게 되는 일화에 나오는 지명(地名)이 이 같은 이론의 이름이 됐다.
한 집단 내에서 모든 구성원이 각자가 다 원하지 않는 방향의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자신의 의사와 상반되는 결정을 내리는 데 동의한 것이다. 지식 수준이 높아도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 내린 결정은 이처럼 잘못된 판단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집단 사고 함정에 대한 지적이다. 특히 응집된 집단은 자기 과신과 폐쇄성에 매몰되어 집단 사고의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때로는 반대를 위한 반대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떻게 원하지 않는 이런 일이 쉽게 일어날 수 있을까? 이들은 무엇을 잘못했을까? 어빙 재니스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는 오랜 연구 끝에 1972년에 출간한 저서 ‘집단사고의 희생자들(Victims of Groupthink)’에서 "아무리 개인의 지식 수준이 높아도 동질성이 짙은 사람들이 모이면 의사 결정의 질이 현저히 저하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이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살 길"이라고 강조하면서 민주당의 적이자 왕따가 되고 있다./이동률 기자 |
실제 인간은 집단의 경향에 반대로 행동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 자신에 불이익이 주어지는 것을 무서워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거나 소속원에 대한 배려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할 용기를 내지 못한 결과에서 비롯된다. 우리의 정치상황은 진영논리에 함몰된 여당인 국민의힘과 거대야당인 민주당의 강대강 대치상황이다, 국민들도 ‘애빌린의 역설’을 강요하는 사회에 살고 있지않나 의심스러울 정도다. ‘체포동의안 정국’의 단일대오도 민주당에는 ‘애빌린의 역설’이 스며들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처럼 보이는 것 왜일까?
‘애빌린의 역설’은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구성원들이나 이른바 동지들의 집단 사고에 따른 '동조(同調)' 행위에 빠질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모두가 찬성했다고 잘되거나 행복할까? ‘텍사스 가족’들처럼 지나친 배려 때문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집단의 분위기가 너무 권위적이거나 커뮤니케이션이 자유롭게 이루어지지 못할 때도 표출된다. 구성원들은 반대 의견을 말했다가 ‘왕따’가 되거나 ‘적’이 될까 봐,다수를 따르는 것이 옳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리더, 당사자이자 대표인 이대표의 역할이 여느때 보다 결정적이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민주당의 적이자 왕따가 되고 있다. 비판적 사고는 십중팔구 억압받기 쉬운 탓이다. 그는 최근 들어 연일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이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살 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 22일 방송 인터뷰에서는 "지금 이 대표는 낭떠러지에 서 있는 모습"이라며 "(이 대표의 지지자는) 그 밑에 아무것도 없고 그냥 끝이라고 생각을 하시는데 전 그 밑에 아주 좀 높이 솟아오르는 ‘트램펄린’이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이른바 이순신 장군의 좌우명이자 손자병법과 함께 중국의 2대 병서(兵書)인 오자병법에서 유래하는 필사즉생필생즉사(必死卽生必生卽死)의 논리다, 오자병법의 저자인 오기((吳起)는 76번을 적과 싸워 12번을 비기고 64번을 이긴 무패의 전쟁천재로 알려져 있다.
박 전위원장은 "지금처럼 방탄을 계속하면 폭망"이라며 "수도권 같은 경우는 121석 중에 민주당이 103개를 가지고 있는데 절반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민주당 총선 전략의 핵심은 이 대표의 희생 또 체포동의안 통과로 체포동의안 가결이 되면 압승이라고 생각한다"고 열변을 토한다. 그러자 ‘박지현 출당 혹은 중징계’를 요구하는 권리당원 청원이 4만명에 육박한다.
민주당은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당의 길 1차 토론회'를 가졌다. 이재명 대표가 참석해 인사말하고 있다./이새롬 기자 |
민주당 자체도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장기화에 이어 당 지지율 침체 조짐까지 보여 위기 국면이다. 당 지지율도 국민의힘과 백중지세였으나 최근 들어 오차 범위 바깥으로 밀려났다. 지난 20일 발표된 미디어트리뷴 의뢰 리얼미터 여론조사(13∼17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2504명)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39.9%로 국민의힘 45.0%에 5.1%포인트 차이로 뒤졌다. 지난해 6월 이후 처음이다. 앞서 한국갤럽 조사도 마찬가지다.
‘애빌린의 역설’은 행위가 이뤄진 뒤 집단 사고에 따른 동조 행위에 대한 결과가 나오면 원인 규명이 반드시 이루어진다. 서로를 탓하는 양상으로 가기 십상이다. 자신은 가고 싶지 않았지만 남편이 가자고 해서, 아내가 가자고 해서, 장모가 동의해서 등등 말이다.
가톨릭에서는 어떤 사람을 성인으로 세우려고 할 때, 검증을 위해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는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을 반드시 참석시킨다고 한다. 집단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모두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할 ‘악마의 대변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983년에 이 제도가 폐지됐지만 여전히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린다.
재니스 교수는 집단 사고의 함정 조건으로 강력한 집단 응집력과 강력한 지도자 등을 꼽았다. 특히 이끄는 지도자가 권위적이거나 지시적이라면 이 같은 위험에 빠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조선의 명군 세종대왕도 이 방법을 잘 활용한 사례로 꼽힌다. 어전회의 때마다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의 예조판서 허조를 참석시켜 이 역할을 맡겼다.
내가, 우리가 옳다는 주장이나 생각이 비록 만장일치라도 항상 ‘절대 가치’를 이어 갈 수는 없다. 창조적 상상(想像)과 일상적 사고(思考)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여권이 아무리 싫고 정의당에 서운함이 많더라도 대한민국 의회민주주의의 발전 위해 ‘애빌린의 역설’의 함정만은 피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