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에 빛날 위대한 평결 “미쓰비시, 강제동원 배상하라” … 정부, 막아서면 안돼
,일제는 1941년 태평양 전쟁 발발 후, 침략전쟁에 필요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근로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조선의 소녀 5만~7만을 강제 동원했다./(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지난 16일, 서울 한복판에서 일본 국가 '기미가요'가 울려 퍼졌다. 이날 일왕 생일기념 행사장의 기미가요 연주는 광복 이후 공식석상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못하다. 반일 시민사회단체들이 식민통치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자행한 치욕적인 도발이라고 거친 항의를 하고 있다. 산케이 신문도 기미가요 연주를 ‘이례적인 일’이라고 논평했다. 한일 관계개선에 나선 윤석열 정부이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을 덧붙였다. 이날 행사에는 외교부 이도훈 2차관도 참석했다.
기미가요의 가사는 이렇다. 천왕의 통치시대는 천년만년 이어지리라. 모래가 바위 되고, 바위에 이끼가 낄 때까지.
대동아가 번영하기 위해서는 천왕의 통치가 영구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일제 강점을 대동아 공영으로 호도한 이 같은 군국주의 찬미 일색의 내용 때문에 반감을 갖는 일본인들도 많다. 교사들 일부가 기미가요 제창을 거부해 징계를 받은 파문도 일었었다.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기미가요 연주를 더욱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일제 강제동원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들의 배상문제가 한일 간의 첨예한 외교 현안으로 떠오른 상황이기 때문이다.
근로정신대는 일제가 침략전쟁에 필요한 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1941년 태평양 전쟁 발발로 남성 노동력 부족이 심각해지자 군수공장에서 여성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돈도 벌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선전을 앞세워 가난한 집안의 소녀들을 유인했다. 당시 동원된 조선인 소녀는 5만~7만으로 추산되고 있다.
일본이 패망한 후 이들 소녀들은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귀향했다. 이들을 맞은 고향도 옛 인심은 아니었다. 질시와 모멸을 견뎌야 했다. 이 같은 사회의 왜곡된 시선으로 소녀에서 할머니가 될 때까지 내내 이들의 삶은 힘겹고 모질었다.
10여 년 전 쯤 5인의 할머니들은 당신들의 청춘을 앗아간 전범기업 ‘미쓰비시’를 상대로 배상청구 소송을 시작했다. 다른 게 아닌, ‘미불임금’을 달라는 당연한 요구였다. 할머니들은 일본 법원과 한국법원을 오가며 안간 힘을 다했다.
2018년 11월 한국의 대법원은 "미쓰비시 중공업은 강제동원을 배상하라"는 역사적 평결을 내렸다. ‘사법주권’을 행사한 것이다. 그로부터 다시 4년이 흘러갔다. 이 와중에 5명의 할머니 원고 중 세 분이 생을 마감했다. 지금은 양금덕 할머니와 김성주 할머니, 90대 중반을 넘어선 두 분의 고령자 할머니들만 남아 생을 마감하기 전 숙원이 풀릴 날만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앞길은 칠흑같이 어둡다. 이번에는 일본 정부도 아닌, 한국의 외교부가 할머니들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 배상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행치 않는 미쓰비시에 대법원이 미쓰비시 국내 자산 매각(특허권 2개)을 통한 현금화 명령을 내릴 예정이었으나 외교부가 ‘판결보류’를 요청하며 다시 기약 없이 시간이 흐르고 있다. 정부가 스스로 대한민국의 사법주권을 폄훼한 바나 다름이 없다.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기조에 따라 양국 협상에 의한 해결책을 외교부가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 일본 정부의 무성의로 순탄치 않아 보인다. 정부의 저자세 외교를 지적하는 국민적 비난이 들끓고 있을 정도다. 일본 전범기업이 아닌, 국내 대기업의 기부로 배상문제 해결을 검토하고 있다는 정부 방안이 전해지며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이 더욱 거세게 일고 있다.
원고 중 한 분인 양금덕 할머니는 이렇게 외치고 있다. 굶어죽어도 한국 돈은 받지 않겠다. 일본 가서 고생했으니 일본 돈 받아야겠다. 정부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쓰라린 과거사에 한이 맺힌 근로정신대 할머니의 통렬한 언급이다.
이 미궁의 시간 속에서 대한민국의 대법원을 다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미쓰비시 배상하라’는 역사적 평결에 따른 ‘자산매각 현금화 명령’을 이행하라는 주문이다. 사법주권을 지킨 대한민국 헌정사에 기록될 그 위대한 결정을 미룰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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