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 뿌리내린 진보정치 추수하려면, 소선구제 폐지 2024총선 기회 놓쳐선 안돼
정의당 이정미 대표(왼쪽)가 지난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진보당 중앙당사에서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를 예방하고 있다. /더팩트 DB |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이 적대적으로 격돌한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를 거치며 진보정당의 입지는 더욱 초라해졌다. 이 와중에 진보당의 지방선거 선전은 지방의 진보정치 지지자들에게 그나마 위안을 안겨줬다.
진보당의 약진은 ‘나를 대변하는 지역 일꾼’을 뽑자는 정치운동의 결실이다‘는 정가의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슬로건을 앞세운 선거운동에 무려 21명이 당선된 것이다.
반면에 정의당은 지역기반의 정당이라는 관점에서 큰 실패를 맞았다. 실제로 지난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은 비례를 빼면 지역구로 당선된 사람은 단 6명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어떤 정치평론가는 ‘정의당이 하늘을 바라볼 때 진보당은 땅을 파고들었다’고 총평했다.
호남에서도 민주당 독과점 정치의 폐해를 지적하는 여론이 비등했지만 이 기회를 정의당은 활용하지 못했다. 페미니즘이나 성소수자, 기후 위기 활동 같은 진보운동의 의제들이 지역 정치의 주도권을 획득해 가는데 효율적인 영향력을 갖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진보당의 선전 사례에서 교훈을 얻자면 ‘내 옆집에 사는 못사는 사람을 돕자’는 정치운동이 오히려 유권자의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그러나 현 단계 진보정치가 영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진보정치에 대한 신뢰가 시골지역과 같은 지역사회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특히 진보당은 지역의 시민단체와 지역 주민들과 연대하면서 화순군, 익산시, 나주시, 광양시 등 수많은 호남권 지역에서 당선자를 배출했다. 충청도 옥천군에서도 당선자를 냈고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간발의 차이로 낙선한 후보도 있었다. 통상 진보 정당이 노동자들이 밀집한 대도시에서 우세하다는 이미지와는 달리, 시골 지역에서도 상당한 승리를 거둔 셈이다. 진보라는 이념의 승리가 아닌, 지역 주민공동체와의 연대의 승리라고 평가해볼 수 있다.
이 희망을 토대로 진보정당은 2024년 총선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진보당과 정의당은 진보정당의 두 개의 큰 축이다. 정의당은 현재 지역구 1명, 비례 5명, 총 6명의 국회의원이 있고 진보당은 원내 의석이 없다. 원내 의석이 있는 정의당 또한 국회의원 분포에서 알 수 있듯이 창당 이후 현재까지 지방 선거 승리보다는 전국구 비례대표에 의존하는 형태를 보이면서 점차 영향력을 축소시켜왔다.
2020년 총선에서 여영국이 낙선하고, 심상정 역시 간신히 당선 된 것은 정의당이 얼마나 지역 기반에서 큰 약점을 지니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는 양 진보정당들이 희망만을 안고 2024 총선에 임할 수 없는 긴박성을 알리고 있다. 국회에 교두보를 확보하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은 절실한 당면과제이기도 하다. 지난 화물연대 파업,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공 복지예산 축소 등 국회 예산 투쟁 국면에서 진보정당은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정부여당과 민주당의 밀고 당기기 끝에 의결에 이르는 과정을 사실상 지켜보기만 했을 뿐이다.
약자들이 권리를 주장하는 시위나 집회에 동참하는 것만으로 정당의 역할을 다 했다고 볼 수는 없다. 정당은 원내 투쟁을 통해 강령을 실천해야 한다. 2024년 총선은 그만큼 절박한 과제이지만 현 단계에서 진보정당의 총선 약진 가능성은 솔직히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선택지를 하나로 좁혀야 한다’는 통합론이 고개를 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양 정당이 단일후보를 내는 정치연합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그 정도의 연대로는 실효성이 미미하다는 게 지난 지방선거에서 드러났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광주·전남만 빼놓고 여타 지역은 진보정당이 단일화 후보를 냈지만, 진보정당의 통합을 위한 실험을 했다는 의미 외에는 별다른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총선 선전을 위해서는 보다 견실하고 큰 틀의 화학적 결합이 요구된다는 얘기다.
양 당의 통합론은 아직은 희미한 목소리에 그치고 있다. 당 밖의 진보정치 지지 세력들은 ‘통합 없이 미래 없다’는 주문을 하고 있지만 양 당은 부러 통합론을 외면하는 모습이어서 답답함을 안겨주고 있다. 또한 소선거구제가 폐지될 가능성이 짙은 다음 총선은 진보정당이 원내에 교두보를 확보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선택지가 두 개로 갈리는 상황에서 이 기회는 물거품이 될 여지가 많다. 진보정당의 존재감은 거대 양당이 적대적 공생을 하는 폐단을 극복하고 우리 정치의 건강성과 다양성을 지켜가는 정치 비타민과 같다. 진보정치 지지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통합의 드라마가 펼쳐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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