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명 대세'인 민주당, 이 대표의 '방탄'으로 작용
여권의 '야당 말살을 위한 전쟁'으로 프레임 변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이 24일 ‘대장동 특혜 비리‘ 관련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형제들이라고 불렸던 그런 사람들 함께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상당히 다르구나." 그래서 입을 열었다고 한다. 지난 20일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입’이 지금 더불어민주당을 뒤흔들고 있다. 특히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그 측근들을 향하고 있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정조준하고 있는 형국이다. 유 전 본부장은 대장동 의혹 수사가 시작된 지난해 9월 30일 압수수색 당시 창밖으로 휴대전화를 던진 이래 지난 1년간 구속 수사 및 재판을 받으면서 입을 열지 않는 ‘의리’를 지켜 왔다.
그랬던 유 전 본부장은 석방 직후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에게 대선 경선자금 8억 원을 건넸다" "정진상 실장에게도 5000만 원을 줬다"고 폭로했다. 이어"이재명이 명령한 죗값은 이재명이 받아야 한다"며 연일 폭탄 발언을 쏟아낸다. 유 전 본부장의 발언을 보면 ‘형제라고 불렸던 그런 사람은 '이재명 대표와 그 측근들'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때는 "함께 해도 좋겠다’고 생각을 가졌으나 어떤 이유인지 계기인지는 몰라도 이제는 ‘상당히 다르다’ 는 생각의 변화에 입을 열고 있다.
유 전 본부장은 특히 "내가 벌 받을 건 받고, 이재명의 명령으로 한 건 이재명이 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이 대표의 지시를 받고 일련의 행동을 했다는 뉘앙스도 풍긴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연계된 발언들이다. 현재로선 주장에 불과할지 몰라도 검찰이 수사 중이고 이 대표의 측근인 김용 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구속이 됐고, 정진상 민주당 대표비서실 정무실장은 검찰로부터 출국금지를 당한 상황이다. 법조계에선 정진상 실장에 대한 강제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유 전 본부장은 석방 직후 담당 법원에 신변보호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다. 경찰도 24일부터 신변보호를 시작했다, 유 전 본부장이 지난 21일 언론과 인터뷰에서 "자살 당한다는 말도 나오고 별말 다 나오는데 인명재천 아니겠나"라고 한 대목은 대장동 사건이 불거진 뒤 잇따라 자살한 관련자들의 죽음과 연계되어 받아들여진다. 사건 초기인 지난해 성남도시개발공사 유한기 전 개발사업본부장, 김문기 전 개발1처장 등이 자살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민생파탄·검찰독재 규탄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국회=남윤호 기자 |
하지만 이 대표의 입장은 다르다. 검찰에서 의혹을 갖고 수사하는 모든 사건들에 대해 자신과의 연관성을 부인한다. 대선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이 대표는 김용이 구속된 직후인 지난 20일 "대선자금 운운하는데 불법자금은 1원도 쓴 적이 없다"고 깅조했다. 이후 유 전 본부장이 자신과 관련 언급한 발언에 대해선 묵묵부답이다. 대신 자신과 민주당이 주장해온 검찰을 앞세운 '야당탄압'과 '사법 리스크 특검'만 강조한다.
'사법 리스크'는 누구에서 비롯됐나? 검찰의 수사에서 밝혀진 돈 요구 경로, 남욱 변호사의 돈 마련 경위, 돈 전달 인물·장소·시간·방법이 특정된 상황이다. 언뜻 보면 이 대표는 상관없어 보인다. 민주당은 '조작'을 부르짖는다. 하지만 이 말과 주장에 동참한다 해도 과연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얼마나 될까. 이 대표는 김용의 경우도 "개인적 일탈"이라고 한다. "돈을 본 적도 쓴 적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 정말 그런 것일까
이 대표는 자신을 둘러싼 '사법리스크'를 초월한 것인지, 아니면 무시하고 있는 것인지 속내를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그동안 ‘방탄 논란'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모르는 국민이 없다. 자신을 향하는 유 전 본부장의 발언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서도 대응은 없다.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대선 때까지 사안별로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과 사뭇 달라 의아할 지경이다.
이 대표는 대선 실패 뒤 사법 리스크만 안고 물러났지만 곧 이어 일사천리로 국회의원이 되고, 당 대표에 당선되었다. 당시 같은 당내에서조차 무리수라는 비판을 제기했음에도 밀어붙였다. 상식적으로 설명되기 힘든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와 인천 계양을 지역구의 공백이 본격적인 방탄의 출발이라고 보는 의심의 눈초리가 적지 않다. 그때부터 이재명 개인의 '사법 리스크'는 정치로 진화한 듯하다.
구속된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 사진은 경기도 대변인 시절 김 부원장./경기도 제공 |
국회의원직과 대표직에 올랐을 때만 해도 '방탄용'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당 대표가 된 이후에는 '이재명 사당화' 논란까지 합쳐진다. 측근인 김용과 정진상도 당직자가 된다. 이후 김용이 구속되고 검찰에서 민주당사 압수수색 시도가 이어지고 정진상이 출금조치 된다. 방탄은 여기서 화려하게 명실상부한 '야당탄압'으로 진화한다. 사실 정치검찰이 야당 대표를 겨냥해 당직자인 대표 측근 구속하고 출국금지 조치했다면 누가 봐도 ‘야당 탄압’이 맞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대응이 불가피하다.
여기서 짚어볼 대목은 과연 우리 검찰이 정치검찰일까라는 부분이다. 일부는 그렇다고 할지 몰라도 상식적으로는 진영논리에 국한된다고 본다. 여기서 또 이 대표는 뜬금없이 특검을 여권에 제안한다. 재탕인데다 명분은 약해도 협상 조건으로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듯하다. 여당이 안 받자 그 핑계로 윤석열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도 보이콧한다. 검찰 수사가 "조작"이며 '야당의 정치 탄압"이라는 목소리로 민주당을 결집하는 계기로 잡은 셈이다.
친명이 대세인 민주당은 자연스럽게 보다 높고 단단한 이 대표의 ‘방탄’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대표가 대표 신분이 아니었다면 의원들의 집단행동이 가능했을까. 민주당은 26일에도 오후 국회 본관 계단 앞에서 '민생파탄·검찰독재 규탄대회'를 연다. 국회 자체를 방탄의 소구를 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드는 것은 개인적인 기우일까. 이 대표는 "위기 속에도 정부는 일부 정치 검찰을 앞세워 공안 통치로 야당을 탄압하고 전 정부 공격하는 데 국가역량을 소진하고 있다"며 여권 공격으로 유 전 본부장의 폭로 발언에 갈음하는 듯하다. '사법 리스크'에 유동규 전 본부장까지 폭로에 나서자 잽싸게 여권의 '야당 말살을 위한 전쟁'으로 프레임을 바꾼 셈이다..
원래 야당이 여당을 견제하기 위해 공격하고 정부와 여당은 어떻게든 국가 경영을 책임지기 위해, 더 나은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힘을 합치자고 포용하고 설득해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은 대선 후보의 '사법 리스크'가 현직 국회의원+거대야당 대표로의 변신을 통해 여권의 검찰을 앞세운 야당 정치탄압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경찰과 검찰이 죄가 있다고 해서 없던 죄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죄의 유무는 사법부가 판단한다. 설령 윤 정권의 '한동훈 검찰'이 대선후보였던 야당 대표에 죄를 덮어씌운다 하더라도 민주당은 걱정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사법부는 문재인 정권의 '김명수 사법부'라는 논리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이참에 본인도 무관하다고 하니 지지자들과 국민을 위해서 좀 일찍 차기 대선후보로 검증 받은 셈으로 치면 별일도 아닐 것 같은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유 전 본부장의 발언도 '야당 탄압'의 일환인가 묻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