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 尹대통령 비속어 공방...'뭣이 중헌디?'
입력: 2022.09.30 00:00 / 수정: 2022.09.30 00:00

사실 아닌 진실은 없어...사실은 하나뿐이나 진실은 둘 가능
특히 언론은 주의 필요...특정 관점 프레임 가능


영국, 미국, 캐나다 순방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24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공군 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영국, 미국, 캐나다 순방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24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공군 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최한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회의장을 빠져 나오면서 한 비속어 발언 논란이 일파만파다.

발단은 이랬다. 지난 22일 오전 10시 7분(한국시간) MBC 디지털뉴스가 ‘오늘 이 뉴스’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XXX은 X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제하의 1분 12초짜리 동영상을 보도한다. MBC뉴스가 친절하게 영상 화면에 자막까지 달아서 ‘대통령의 비속어’ 뉴스를 만들어낸다. 현장에서도 듣기 힘든 윤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을 "우리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으니 잘 알아두시오"라고 상대국과 우리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및 다른 경쟁 언론, 궁극적으로 우리 국민에게 친절하게 알려준 셈이 됐다.

그러자 민주당도 호재를 놓칠세라 그 ‘자막’의 '워딩'을 그대로 가져다 ‘외교 참사’등의 표현으로 공세에 나선다. MBC의 이른바 ‘단독 보도’가 나간 뒤 경쟁 언론들도 부랴부랴 논란의 뉴스를 내보냈다. 보도를 내보낸 일부 언론들은 방송사들을 중심으로 ‘워딩’에 대한 검증을 했다며 MBC의 첫 보도와 같은 내용으로 보도한다.

윤 대통령의 이 워딩이 불가역적 사실(Fact)일까? 다른 예를 들어보자. 화재 현장에서 사체가 발견됐다 . 사체가 불에 탄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불이 나서 숨진 것일까? 강에 사체가 떠올랐다. 강가에는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사체는 물에 불었다. 자살이든 실수든 그는 물에 빠져 죽은 게 사실일까?

사실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이다. 불에 탄 시체나 물에 빠진 시체는 현재에 있는 사실이다. 법의학은 사실이 기만적일 수 있다는 걸 확인한다. 부검 결과 시체의 기도나 폐에서 그을음이나 물이 발견되지 않는다. 화재사나 익사를 위장한 타살이다. 발견되지 않으면 화재사나 익사가 아니다. 사실 뒤의 진실이 고개를 내미는 순간이다.

사실과 인과관계가 확실한 진실(Truth)은 또 뭘까? ‘거짓 없는 사실’을 진실이라고 한다. 진실은 사실을 특정한 관점에서 해석하도록 하는 틀, 즉 프레임을 구성할 수 있어 원인에 대한 해석과 도덕적 평가, 해법에 따라 다르게 도출될 수 있다. 그래서 언론은 특히 유의해야 한다. 여기에 ‘만에 하나’ 굳게 믿었던 사실마저 아닌 것으로 뒤늦게 판명이 난다면 그건 사실이 아니면서 진실도 아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제7차 한-영 외교장관 전략대화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민주당은 비속어 논란 등 윤 대통령 해외 순방 과정에서 빚어진 논란의 책임을 물기 위해 소속 의원 169명 전원의 서명을 받아 박 장관의 해임안을 국회에 제출  29일  통과시켰다./이동률 기자
박진 외교부 장관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제7차 한-영 외교장관 전략대화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민주당은 비속어 논란 등 윤 대통령 해외 순방 과정에서 빚어진 논란의 책임을 물기 위해 소속 의원 169명 전원의 서명을 받아 박 장관의 해임안을 국회에 제출 29일 통과시켰다./이동률 기자

사실 앞에는 ‘나의’ 혹은 ‘저 사람의’ 같은 소유격이 사용되지 않는다. 반면 ‘진실’은 다양한 인칭의 소유격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사실은 하나지만 진실은 여럿 일 수 있다. 사실이 아닌 진실은 없지만 사실이 곧 진실은 아니라는 문제 제기와 논란은 있어왔다. 그래서 사실과 진실 간에도 갈등과 대립, 참과 거짓, 정의와 불의의 싸움으로 번지기 십상이다. 만에 하나 굳게 믿은 사실마저 아닌 것으로 판명난다면 보다 극한적인 대립적 상황으로 가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전의 대립을 넘어서는 살고 죽는 전쟁 못지 않은 상황으로도 갈 수 있다.

비속어 보도 13시간 뒤 김은혜 홍보수석은 ‘이XX’와 관련 "거친 표현에 대해 느끼시는 국민 우려를 잘 듣고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비속어 발화 사실을 인정한다. MBC발 ‘바이든’도 아니고 ‘날리면’이라고 말한다. 또 ‘ XX들 해당 발언이 미국 의회가 아닌 우리나라 국회를 언급한 것이냐’는 추가 질문에 "네. 미국 의회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에둘러 확인시켜준다.

윤 대통령은 지난 26일 오전 5박 7일간의 해외 순방 후 첫 출근길에서 비속어 관련 입장을 내놓지만 양상은 사실보다는 '진실'에 무게추를 두는 듯한 입장을 보인다. 여야가 닷새째 이 논란을 두고 공방을 주고 받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명확한 입장을 밝히면 상황이 일단락될 수도 있었지만 답변은 예상과는 달랐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동맹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변하며 "사실과 다른 보도로써 동맹을 훼손한다는 것은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는 부분을 먼저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8일 오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고 있다.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영미순방으로 국격 훼손했다고 지적했다/남윤호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8일 오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고 있다.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영미순방으로 '국격 훼손'했다고 지적했다/남윤호 기자

그러면서 "관련된 나머지 얘기들은 먼저 이 부분에 대한 진상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더 확실하게 밝혀져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한다. 야권 공세에 대해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이에 국민의 힘도 MBC의 사장, 해당 기자, 임원진 등을 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고 천명하면서 "자막 조작" "국익 자해행위"라며 대대적인 반격에 나선다.

다음 날인 27일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의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MBC 라디오에서 ‘대통령이 비속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가 아니라, 맥락상 그게 본질적인 게 아니었다는 것이냐’는 사회자의 물음에 "그렇다"고 인정한다. MBC와 언론단체들까지 각자 확신하는 진실에 정의감까지 불 타오른 탓인지 비난성명을 내며 극한 강대강으로 치닫게 된 시점도 이즈음이다.

민주당은 "외교참사,거짓말"라며 박진 외교부 장관의 해임까지 당론으로 결정하고 29일 국회에서 해임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앞서 윤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를 강력 시사했다. 이미 양진영이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표현이 적확해 보인다. 비속어 논란이 순방 외교 성과는 물론이고 정치뿐 아니라 민생과 경제 등 시급한 현안을 포함한 모든 사안을 송두리 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갈 데까지 간 것 같다. 검찰 고발 등도 이어져 사실과 진실에 대한 검증은 머지않은 시일내 이뤄지리라고 본다. 워딩이라는 팩트에서부터 서로의 주장이 맞서고 있지만 ‘사실은 하나밖에 없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때 '진위', 즉 양 측의 승패는 반드시 판가름나게 될 것이다. 다른 변수, 이른바 정치적 술수가 개입되지 않는다면 자명하다. 그렇다고 영광의 승리가 승자에게 돌아갈까? 양측에 남는 것은 상처뿐이라고 본다. '식물국회' '식물정치'로 피해는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다. 패배자가 책임을 지겠다고 해도 오롯이 질 수 있는 게재는 아닌 듯하다

정작 워싱턴 정가는 윤 대통령 발언에 큰 관심이 없다고 한다. 사적 발언을 한미 간 외교 문제로 비화시킬 이유가 없다는 게 워싱턴 정가의 전언이다. 외교무대는 자국 이익을 위한 '총성 없는 전쟁터'다. 당연히 상대방의 분열된 지점부터 공략하기 마련이다. 국익을 내세워 비판의 목소리를 억압하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인이나 언론인이든 마찬가지다. 대통령 언행도 늘 조심스러워야 한다. 애초부터 빌미를 만들지 않았어야 한다. 국민은 지금 상황의 팩트와 진실 찾기는 '비속어 워딩'이 아닌 '민생'이고 '경제'라고 믿고 있다. 뭣이 중헌디?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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