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대표성 넘어선 협치 구현 실체…2년여 ‘유권자의 시간’ 거치며 성패 결론 이를 듯
국민의힘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 특별위원회 양향자 위원장(무소속 광주 서구 을)이 지난 달 28일 특위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더팩트 DB |
[더팩트 ㅣ 광주=박호재 기자]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소수자의 권리는 곧잘 외면당할 때가 많다. 이 같은 빈틈을 빗대어 ‘민주주의는 다수의 독재’ 라는 아픈 지적이 제기되기도 한다.
우리 국회 또한 인구비례에 따른 지역대표제로 원 구성이 되기에, 지역을 넘어서는 각계각층의 이해가 충분히 반영된다고 볼 수 없다. 이에 대한 성찰로 지역대표제를 대신하는 ‘직능대표제’라는 대안의 정치구조가 종종 거론되기도 한다.
직능대표제를 주창하는 이들의 논리에는 크게 두 가지의 관점이 담겨있다. 그 중 하나는 교통통신의 발달로 세계가 동시 생활권이 된 상황에서 지역적 한계가 정책 차별화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는 한국 정치가 겪고 있는 갈등의 대부분이 지역대표제 정치구조 때문이라는 인식이다. 지난 우리 정치사를 두고 볼 때 설득력 있게 다가서는 주장이다.
특히 우리의 경우 영남과 호남이라는 견고한 지역기반을 근거로 대립하는 거대 양당 독과점 정치구조 때문에 그 갈등의 양상은 심각하다. 이 때문에 갈등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대선 국면마다 통합정부를 구성하는 연합정치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공동체의 미래를 여는 정책보다는 갈등과 증오를 부추기는 정치가 계속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 비롯된 주장이다. 지난 대선 전에도 김종인 전 위원장을 중심으로 통합정부 구성을 통한 협치 내각 요청이 강하게 제기됐었다.
그러나 대선 후 윤석열 정권은 오히려 측근 인사, 검찰 출신 요직 배치로 반동의 정치구조를 택했다. 집권 여당이 권력을 독식하는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협치가 얼마나 힘겨운 과제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무소속 양향자 국회의원이 지난 28일 국민의힘 반도체 특위위원장을 맡으면서 양 의원의 지역구인 광주 서구을을 노리는 민주당 지역위원장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더팩트 DB |
이런 관점에서 주시할 때 여당의 반도체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양향자 무소속 의원의 선택은 큰 의미를 지닌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볼 수 없었던 협치 구현의 실체로 다가서기 때문이다.
양 의원은 지난 달 28일 특위 첫 회의에서 반도체는 경제이자 안보이기 때문에 여야와 이념이 따로 없다는 취지의 인사말을 했다. 양 의원 자신이 광주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반도체 메모리설계실 연구보조원으로 입사해 30년간 근무하고 임원까지 지낸 반도체 전문가였던 까닭에 의례적인 정치수사가 아닌, 진정성이 느껴지는 언급이다.
양 의원에게 반도체특위 위원장을 맡긴 국민의힘의 결정 또한 보통의 결단은 아니지만, 이에 호응한 양 의원의 선택은 자신의 정치생명을 불사한 온몸의 투신이라는 결기가 느껴진다.
양 의원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영입하고 민주당의 텃밭인 광주에 지역구(서구을)를 둔 정치인이다. 지역구 유권자들의 선택에 정치생명을 기댈 수밖에 없는 정치인으로서, 누구나 감히 할 수 있는 결정은 아니다. ‘좁은 문’이 다가서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가 걸어가야 할 가시밭길은 이미 시작됐다. 양 의원의 지역구는 벌써부터 민주당의 공천을 노리는 입지자들로 붐비고 있다. 당연히 예고된 수순이지만 문재인의 부름을 받고 한 때 민주당 후보로 지역민의 선택을 받은 ‘당신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배신코드가 여론의 일각에서 작동되고 있기도 하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실사구시의 정치’라는 양향자 정치의 정체성을 광주 시민사회에 뚜렷하게 각인시켰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정파의 이해에 좌고우면하지 않겠다는 양 의원의 행보는 총선까지 남은 2년의 ‘유권자의 시간’을 거치며 성패의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대선‧지방선거에 참패한 민주당을 향해 광주 시민사회는 ‘광주 국회의원들 그동안 한 일 뭐있나?’ 라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민생정치의 ‘생산성’을 따져 묻는 이 질문의 연장선상에서 다시 생각해본다면 양 의원의 선택이 돌 맞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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