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재의 왜들 그러시죠?] ‘5월 광주’는 시대정신 표상으로 거듭나야
입력: 2022.05.20 00:00 / 수정: 2022.05.20 00:00

역사 분수령 이룬 고결한 혁명도 온전히 순결하지 않아, 부단한 성찰 통한 거듭나기 필요

5.18민주광장(금남로)에 마련된 시민 헌화소에 18일 오후 추모의 국화를 헌화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시민들./광주= 나윤상 기자
5.18민주광장(금남로)에 마련된 시민 헌화소에 18일 오후 추모의 국화를 헌화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시민들./광주= 나윤상 기자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6·1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19일 시작됐다. 출근 길 거리 풍경이 어제와는 사뭇 다르다. 대로변 길모퉁이마다 색색의 유니폼을 차려 입은 운동원들이 피켓을 흔들고, 유세차가 거리를 누빈다.

피켓에 적힌 홍보 문구들이 시야를 어지럽게 하지만 머릿속을 파고들지는 않는 게 기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공의를 내세운 정치가 사유화되면서 빚은 적폐들을 오랜 시간 동안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정치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라고 회의하는 냉소는 국민 저변의 일반적인 정서가 되고 말았다.

이 와중에 광주는 5·18 42주년을 치르고 있다. 후보들이 이를 놓칠 리가 없다. 저마다 5·18의 의미를 거론하고 누구나 얘기하는 빤한 주문들을 해댄다. 이 때문에 그 언급들은 허공에서 겉돌 뿐이다.

5·18의 의미와 가치를 따지는 질문이 오래도록 거듭돼왔던 것만은 사실이다. 한국의 현대사는 ‘5월 광주는 무엇인가?’라는 정치적 화두에 대해 각기 다른 답을 찾으려하는 세력 간의 갈등과 반목으로 격랑을 겪어 왔다.

가해세력의 정치적 후예들은 공권력에 폭력으로 저항한 폭동으로 매도했고, 이에 반발하는 민주화 운동 세력은 광주의 5·18은 군부독재를 타도하고 민주정부를 세운 모체 정신으로 그 위상을 우뚝 세웠다.

오랜 세월이 지나야 했지만 전선의 승패는 가려졌다. 그날의 희생자들이 영면한 묘역은 국립5·18민주묘지로 이름 지어졌고, 보수정당의 대통령도 기념식에 참석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문득, 5·18 이듬해에 희생자 추모를 위해 묘역을 찾는 학생과 시민들을 경찰이 벽을 치고 가로막았던 옛 기억이 떠오른다. 대학 졸업반이었던 기자는 그때 동료들과 함께 샛길을 찾아 산을 넘고 도랑을 건너 열사들의 묘역에 이른 후 서로 부둥켜안고 하늘이 무너진 양 펑펑 울었다.

희생자들의 무덤에 참배조차 할 수 없었던 ‘5월 광주’의 참담한 기억은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동시대인들에게 공유되지 못했다. 무지하고 야만적인 정권과 이에 기생한 언론의 외면으로 국민적 공감을 얻기는커녕, 변방의 외침으로 철저하게 무시돼 국민들의 눈을 가렸다.

얼마 전 광주 송암동 양민학살 학술포럼에 취재차 다녀왔다. 그날 새삼 광주의 아픔이 고통스럽게 되새겨졌다. 민가를 향한 공수부대의 무차별 발포로 어린 초등학생과 중학생 2명이 숨진 사건이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어머니는 엄혹한 폭압의 세월에 기가 질려 그 후로도 오래도록 그 죽음조차 입 밖에 함부로 꺼낼 수 없었지만, '학살 원흉' 전두환 전대통령은 사과의 말 한마디 없이 생을 마쳤다. 그래도 개개인의 비극적 아픔들이 집단지성의 공감으로 5월 광주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근원적 동력이었다는 역사적 평가로 자리매김 됐다.

5·18 기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유족들과 손을 맞잡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5·18 정신을 기리며 통합을 당부했다. 100번 잘한 일이다. 그러나 5월 정신은 지난 족적을 추켜세우는 것만으로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윤 대통령은 정치의 사유화가 아닌, 공의를 지키는 올곧음을 통해 5·18에 대한 존중을 증거 해야 한다.

‘5월 광주’도 이제 성찰이 필요하다고 시민들은 입을 모은다. 그 가치와 역사적 위상에 엇박자를 내는 일들이 적지 않게 노출됐기 때문이다. 역사의 분수령을 이룬 아무리 고결한 혁명도 세세히 들여다보면 온전히 순결하지 못하다. 독립운동조차 그렇다. 끝없는 성찰과 시대정신에 걸맞는 거듭나기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찰을 언급하다 보니 신동엽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4·19 혁명의 진정한 가치를 애타게 부르짖는 시인의 순결한 열정이 드러난 시구이다.

신동엽 시인이 요절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는 5월 광주를 이렇게 노래했을지 모른다. 껍데기는 가라. 5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forthetru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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