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 한덕수 총리 후보 지명과 민주당의 '고민'
입력: 2022.04.06 00:00 / 수정: 2022.04.06 00:00

'송곳 검증' 벼르지만 부담도 만만치 않아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3일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자회견장에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배석한 가운데 새정부 초대 총리후보로 한 전 국무총리를 지명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3일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자회견장에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배석한 가운데 새정부 초대 총리후보로 한 전 국무총리를 지명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윤석열 당선인이 새 정부의 총리 후보자로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지명하자, 더불어민주당은 인사청문회를 통한 ‘송곳 검증’을 예고하고 나선다. 총리 후보자를 포함, 새 정부의 장관 후보자를 대상으로 한 인사청문기조를 잡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이번 주 안에 꾸린다고 한다.

한 총리 후보자는 호남(전북 전주) 출신이면서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에 이르는 색깔이 다른 4개 정부에서 통상산업부 차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경제부총리 및 국무총리, 주미국대사로 중용됐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윤석열호’ 순항의 첫 단계인 국회 총리인사청문회와 국회 인준표결을 무사히 통과하기 위한 카드로 읽힌다. 숙고 끝에 민주당의 반감이 상대적으로 적은 인물을 선택한 것으로 여겨진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한 후보자가 국회의 동의를 받기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 보인다. 윤 당선자 쪽에서도 국회 인준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심 갖고 있는 듯하다. 지난 2007년 총리 인준을 위한 국회 본회의 당시 표결에서 국회의원 270명 가운데 210명이 찬성표를 던졌다는 점에서 민주당의 검증에 대한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평가다.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주미대사로 발탁되는 등 경제와 외교에 대한 식견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윤 당선자는 "새 정부는 대내외 엄중한 환경 속에서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기틀을 닦아야 하고 경제와 안보가 하나가 된 경제안보시대를 철저히 대비해나가야 한다"며 한 후보자의 풍부한 경험이 자신의 취약점인 경제·외교 쪽을 보완해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사실도 같은 맥락이다.

민주당 지도부 한 관계자는 "심각한 결격 사유가 나오지 않으면 민주당 입장에서도 괜히 시간을 끌면서 발목 잡는 모습을 연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총리 이후 장관 인사청문회나 여성가족부 해체 등 정부조직법 개편안 등에서 본격적인 견제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후보자는 윤 당선자가 강조해온 ‘공정과 상식’을 상징하는 인물로 보기엔 어렵다. 70대 초반의 나이로 참신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약점이다. 물론 참신함이 유능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첫 신임 국무총리로 지명된 한덕수 전 총리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로 들어가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정부의 첫 신임 국무총리로 지명된 한덕수 전 총리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로 들어가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민주당이 "국민통합은 몇몇 사람들의 기용만으로 이뤄지지 않았고 한 후보자의 국정 운영 철학과 능력, 자질을 국민의 눈높이에서 검증하겠다"고 강조하는 것은 ‘송곳 검증’이 예견되는 대목이다. 총리를 포함한 초대 내각의 인사청문회는 이어지는 6월 지방선거에 맞물려 있다는 사실도 민주당의 '강공 예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수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대한민국 국무총리에게는 과거의 전문성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과감한 분권형 대통령제와 책임총리제를 위한 단단한 소신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후보자가 총리직을 수행했던 시기가 벌써 15년이나 지난 만큼, 대내외적으로 급변한 환경에 맞는 총리 인선은 아니라고 날선 지적을 한 것이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책임론’도 단순하지 않아 보인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지난 1일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저축은행 사태를 촉발한 저축은행법 시행령 개악의 책임자"라며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총리 임명 반대 진정서를 냈다. 2006년 시행령 개정으로 저축은행의 기업대출 한도가 없어졌고 이에 저축은행이 급속히 부실화됐다는 주장이다. 당시 삼화저축은행과 부산저축은행 등 부실 저축은행이 줄줄이 영업정지 되면서, 이들 저축은행에 예금한 이들이 큰 피해를 본 바 있다.

정의당 관계자는 "당시 저축은행 피해자들이 아직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책임 있게 해명하고 조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본다"며 "청문회에서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혹여 청문회 과정에서 새로운 결격 사유가 드러날 경우 거대 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을 더욱 드러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의 다른 관계자는 "한 후보자가 공직에 있을 때와 비교해 지금은 공직자에 대한 눈높이가 많이 올라갔다"며 "검증을 해봐야 적절성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윤 당선인 측은 국회 인사청문 절차를 무난히 통과할 수 있는 인물들을 추리고 추려 한 후보자로 결정한 것과 같다. 나름 ‘신의 한수’로 보인다.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새 정부 초기 국정동력 확보하지 못하면 국정 운영이 처음부터 한순간에 꼬일 수도 있어 후보자 선정에 공을 많이 들인 모양새다.

박홍근(왼쪽 두 번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남윤호 기자
박홍근(왼쪽 두 번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남윤호 기자

민주당은 새 정부의 첫 관문인 총리 인준부터 반대할 경우 자칫 무리한 ‘발목 잡기’로 비칠 수 있다는 부담감이 있지만 그렇다고 ‘무난하게’ 갈 수 없는 형국이다. 윤 당선인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에서 이미 경험했다. 민주당은 정부조직법 개편안과 장관 인사청문회 등에서 벌써 치열한 ‘충돌’을 예고했다. 6월 지방선거를 고려한 정교한 정략적 판단까지 필요한 엄중한 시기라는 사실은 민주당의 수위를 어쩔 수 없이 높여준다. 대선 패배 이후 어수선한 당내 분위기를 가다듬고 지방선거에 당력을 집중시키는 지렛대 역할도 일정 부분 기대할 것으로 여겨진다.

공자는 논어 ‘위정(爲政)’편에서 "바른 사람을 등용하고 바르지 못한 이를 버려주면 백성들이 믿고 따를 것이고(거직조저왕 즉민복/擧直錯諸枉,則民服) 바르지 못한 이를 쓰고 바른 이를 버려두면 백성들이 믿고 따르지 않을 것(거왕착제직 즉민불복/擧枉錯諸直,則民不服)"이라고 했다. 조선 최고의 명군(明君) 세종은 인재 등용에 대해 먼저 마음이 착한지를 보고 열정(熱情)을 평가했다. 그리고 단점은 덮고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게 했으며 정실은 배제하고 능력 위주였으며 끝으로 일단 쓰면 끝까지 믿어주었다고 한다. 요즘 용어로 정리하면 정직(Integrity), 열정(Passion), 장점(Strength), 능력(Meritocracy), 신뢰(Trust)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다양하게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서 맞는 총리의 기준에도 부합해보인다.

인사 청문회가 아직도 정치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순기능이 더 많다. 아무나 장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준 게 가장 크다. 총리나 장관이 되려는 이는 수신제가(修身齊家)에 힘써야 한다는 철칙도 자리잡았다. 야당엔 집권당의 인사 권력을 제한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잘쓰면 탕평·화합의 도구로도 활용 가능하다. 어떤 제도든 다 좋을 순 없다. 이제는 아전인수식의 혹독한 잣대와 망신주기식의 정략적 검증으로 능력 있는 인재 등용을 막는 걸림돌이 되지 않길 바란다. 지금과 같은 중차대한 비상시국이라면 더욱 그렇다.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자 국민적 손해다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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