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재의 왜들 그러시죠?] '왜곡 바람' 일으키는 여론조사 정치 ‘유감’
입력: 2022.01.12 00:00 / 수정: 2022.01.12 00:00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 전화에 응답해달라는 메시지 폭주가 응답률 하나로 후보를 줄세우는 왜곡된 바람을 일으킨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모바일 메시지 캡처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 전화에 응답해달라는 메시지 폭주가 응답률 하나로 후보를 줄세우는 왜곡된 바람을 일으킨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모바일 메시지 캡처

“○○번호로 오는 전화 꼭 받아주세요” …ARS 전화 응답률로 후보 줄세우기 폐해 ‘심각’

[더팩트 ㅣ 광주=박호재 기자] ‘선거는 바람이다’는 말이 있다. 어느 후보가 한번 바람을 일으키면 좀체 대세를 뒤집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그래서 바람이 몰아치는 선거에서는 후보의 정책공약이나 자질은 무용해지기 십상이다. 유권자들이 거센 바람의 막을 뚫고 그 내면의 것들을 세세하게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바람의 선거는 일면 유권자의 눈을 가릴 수밖에 없다.

선거 초반 바람을 일으키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론조사 발표에 따른 순위가 바람의 진원지가 되는 경우가 많다. 후보의 경력 두 가지 정도를 예시하며 묻는 질문이기에 후보의 콘텐츠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단순한 인지도에 따른 결과이겠지만 영향력은 막강하다. 조사에서 뒤처진 후보는 1위 후보를 따라잡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후보도 괴롭고, 후보를 돕는 캠프도 초장부터 힘겨운 선거운동을 해야 하기에 죽을 맛이다.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와 맞붙었던 정동영 후보는 BBK 공세를 거칠게 몰아붙였음에도 불구하고 좀체 좁혀지지 않은 지지율 격차가 얼마나 고민스러웠던지 언론인들과 만난 사석에서 "여론조사가 신이다"는 한탄을 하기도 했다.

19세기 초 미국의 시사 잡지 리터러리 다이제스트(Literary Digest)가 1920년부터 지상투표식 선거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이 선거 여론조사의 시원으로 알려져있다. 지상투표식은 엽서를 보내 답을 받는 방식이다.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와 갤럽여론조사소의 선거예측 경쟁은 종래의 지상투표식 선거여론조사의 종말을 고하는 사건이 됐다.

1936년 당시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전화가입자와 자동차 소유자들 중 1000만 명에게 우편엽서를발송, 236만 7230장을 회수하는 종래의 지상투표식 조사방법을 사용했다. 반면, 갤럽여론조사소는 전국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할당추출법(quota sampling)을 적용, 1500명의 표본을 추출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면접 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갤럽여론조사소측의 대승이었다.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당선자 예측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무려 19% 이상이나 틀려 여론조사 사상 최대 오차를 기록한 반면, 갤럽은 6.8%로 당선자를 예측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통계학에만 머물던 표본추출방법이 세상으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오늘날 선거여론조사의 기법은 이때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선거여론조사는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처음 시도되었다. 선진국에 비해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갤럽을 포함한 일련의 조사기관들이 시도한 선거여론조사와 예측은 한국 선거문화에 과학성과 합리성을 불어넣으면서 선거문화의 질적 향상을 유도해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민심을 제대로 못 짚는다는 비판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후보에 대한 평가를 곧 여론조사의 결과와 동일시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후보들의 입장에선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티켓’이기에 여론조사에 목을 매달지 않을 수가 없다.

지방선거가 임박하며 각종 매체들이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공표하기 시작하면서 후보들의 SNS 메시지가 쇄도한다. "○○번호로 오는 전화 꼭 받아주세요." "○○○ 나오는 번호 꼭 눌러주세요." 대부분 이런 식으로 오는 간절한 메시지를 한 번쯤 받아보지 않은 유권자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여론조사로 후보를 줄 세우는 과정은 왜곡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여론조사가 돌아가는 시점에 맞춰 ‘대기조’라는 조직을 가동해 응답률을 높이는 수법은 이미 일반화된 전략이다. 캠프 사무실에 여러 대의 유선 일반전화를 신청해놓고 여론조사에 대비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ARS 여론조사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후보들의 당연한 선거운동이겠지만, ‘무엇을 꼭 하겠다’는 얘기가 아닌 ‘전화 꼭 받아 달라’는 공허한 메시지가 달가울 리가 없다. 유권자들이 후보의 면면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여론조사 결과 치를 높이기 위해 동원되는 응답기로 전락한 씁쓸한 느낌이 다가서기 때문이다.

forthetrue@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