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엄수된 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 89주기 추모식에서 이재명(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의 추모사를 듣고 있다./이새롬 기자 |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나쁜 정치인과 좋은 국민의 조합’은 없다. 정치인도 국민이고, 국민 가운데 정치인이 나온다.. 정치인은 국민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고 국민 또한 정치인을 떠날 수 없다. 나쁜 정치인을 선택하는 좋은 국민은 없다는 애기다.
다만 나쁜 정치인은 항상 존재한다. 끊임없이 국민을 부추기고 혐오를 유발하고 사실을 왜곡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어떻게 국민을 조종할까 밤낮으로 궁리한다. 적지않은 국민들은 이들의 거짓말에 속아 억지에 환호하고 선택한다. 그리고 차선(次善)이나 차악(次惡)의 선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자신들을 위로한다.
양비론((兩非論)도 다름 아니다. 설령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게서 잘못된 면을 발견하더라도 지지하기 위해 양비론을 동원한다고 한다. 양비론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자신마저 속이는 양비론만 있는 게 아니고 양심적인 양비론도 있기 때문이다.
양비론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흠이 많으면 상대방보다 덜 나쁘거나 똑같은 수준의 정치인으로 자기 최면을 걸고 '그놈이 그놈'이라는 동일화 작업을 거친다. '똑같다'는 합리화를 하면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선택할 때도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기 때문이다.
뻔한 거짓말과 행동을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고 나중에는 자신이 만든 거짓말을 신봉하기도 하는 게 인간이다. 진실은 증명하기 매우 어렵기에 쇼를 하는 정치인이 득세하는 이유도 다름 아니다. 그래도 원하는 세상을 가장 효과적으로 바꿀 수 있는 수단은 정치다. 국민이 정치에 환멸을 느끼면 나쁜 정치인들의 그들만의 리그가 된다.
이번 대선도 ‘차선과 차악’ ‘양비론’이 유권자들을 ‘선택의 혼란’으로 몰고 가는 것 같다. 여 야의 강력한 대선후보 둘 다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시끄럽다. 이런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가?
이재명 더불어 민주당 대선후보가 16일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사회대전환 위원회 출범식후 아들의 도박의혹과 관련 사과를 하고 있다./이선화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대장동 의혹’에서 허우적 거리고 장남 관련 불법 도박 논란과 성매매 의혹 등 폭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뒤지지 않는다. ‘고발 사주’ 논란에다 아내의 이력이 문제가 되고 있다.
영어에 ‘차선(次善)은 최선(最善)의 적’(The good is the enemy of the best)이라는 말이 있다. 방법과 과정을 문제 삼지 않는다면 굳이 최선이 필요없다는 결과주의자들의 주장은 궤변이라는 설명이다. ‘차선’이 ‘최선 중의 하나’는 결코 아니라는 걸 증명한다. 차선이 세 번째, 네 번째 선으로 이어진다면 차악(次惡)과 다를 바 없다. 종국에는 최악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대선도 ‘누가 덜 나쁜가’의 선택은 아니다. 우리는지금 ‘차선 또는 차악’의 프레임에 갇혀있다. ‘누가 덜 나쁜가’와 ‘누가 더 좋은가’의 경쟁은 백지 한 장 차이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8번,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5번. 최근 세 달 간 양 후보가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인 횟수란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국민에게 고개를 숙일지가 궁금하지만 이게 우리의 운명이라면 여기서 최선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전략적이고 계산된 사과를 자주 목격해왔다. 뉘우치고 반성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과하는 모습 보여주기가 주로 강요된 상황에서다. 반성하고 뉘우쳤는지는 개인의 주관적 내심에 속하는 것이므로 알기 어렵다. 법원에서는 진정한 반성과 합의라는 믿음이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라면 모르겠으나, 반성문 한 장 차이로 형량을 다르게 하지 않는다.
반성하고 뉘우친다면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후회의 표정을 지으며 흘리는 눈물,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 착하게 살겠다는 맹세는 말과 글로써는 누구나 얼마든지 연출할 수 있다. 진지한 사과와 반성은 이후의 태도다.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이고 사과문을 발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배우자 김건희씨를 둘러싼 각종 논란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서 죄송하다”고 사과한 뒤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이선화 기자 |
어쨌든 최근 3달 간 양 후보는 수차례 여러 이유로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윤 후보는 3달 간 총 5번 ‘사과’ 혹은 ‘송구’ 표현을 했다. 경선 과정에서 한 이른바 ‘전두환 발언’이 연이은 사과의 계기가 됐다. 반면 이 후보는 10월 8일 경기도지사 신분으로 참석한 경기도청 국정감사장에서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에 대해 "인사권자로서 직원관리를 100% 못한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를 포함, 같은 기간 동안 총 8번, 특히 지난달에만 5번 사과했다.
대장동 관련 외에는 ‘민주당의 부족함’이 사과의 주된 이유였다. "민주당이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몸을 낮췄다. 그리고 자신의 주변과 관련해서는 ‘형수 욕설’과 ‘조카의 모녀 살인사건을 변호’와 관련 고개를 숙였다. 지난 2일에는 ‘조국 사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두 후보 모두 잦은 사과를 했지만 사과에 이르는 과정은 다소 달랐다. 윤 후보의 경우 논란→해명→더 큰 논란→사과의 구도가 반복됐다. 김건희 씨를 둘러싼 논란도 17일 공식 사과하기까지 같은 구도가 반복됐다. 반면 이 후보는 11월에 무더기 사과를 하면서 '진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추격자 입장에서 지지율 만회를 위한 카드로 활용했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사과 이후 지지율을 박빙으로 되돌렸다는 평가도 받는다.
더욱 중요한 건 사과의 횟수나 자세가 아니다. 사과를 하게 된 원인이다. 진정성도 중요하지만 사안의 경중에 따라 국민의 용서나 이해의 폭이 같을 수가 없다. 잘못의 정도가 이른바 차선의 기준이 된다는 애기다. 또 누구의 잘못인가도 중요하다고 본다. 후보 본인의 과실이 첫 번째이고 다음이 가족이다. 대학(大學)에서도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세상에 큰 뜻을 품은 이의 흐름으로 본다. 세상이 달라졌어도 평천하나 치국이 먼저는 아닌 것이다. .
비록 차선이나 차악의 선택이라고 해도 천하를 평정하려는 자는 우선 자신부터 갈고 닦은 뒤 가정을 정갈히 할 수 있고, 나아가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며, 세상을 평정하는 단계에까지 이른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모를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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