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 이재명의 '전두환 평가', 노무현이 들었다면
입력: 2021.12.15 00:00 / 수정: 2021.12.15 14:46
전두환 씨에 대한 평가로 논란을 일으킨 이재명(왼쪽) 더불어 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더팩트DB
전두환 씨에 대한 평가로 논란을 일으킨 이재명(왼쪽) 더불어 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더팩트DB

말 '뒤집기’는 ' 바꾸기'를 거쳐  ‘거짓말’로 귀결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지난 10월 19일 광주에서 대통령을 지낸 고 전두환 씨에 대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는 호남분들이 많다"고 발언했다가 국민적 공분을 산 뒤 사과한 바 있다. 군사 반란을 통해 집권에 성공한 전 씨가 폭력적 진압으로 수많은 광주시민들을 학살했고, 이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트라우마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전 씨의 공적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었다.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윤 후보의 ‘전두환 망언’을 거세게 비판했다. 3일 뒤인 그달 22일 광주 망월동 5·18묘역에서도 윤 후보의 발언을 겨냥해 "살인·강도를 했다는 사실만 빼면 좋은 사람일 수 있다. 무슨 말을 더 하겠느냐", "우리 국민은 학살자 전두환을 잊지 않았고, 윤 후보가 전 씨를 옹호했던 발언도 용서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시 묘역 입구에 묻힌 ‘전두환 비석’도 여러차례 밟았다.

이어 지난달 28일 광주 방문 때는 "광주학살의 주범 전두환을 찬양하고 국민들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대한민국을 끌고 갈 수 없다" "철학도, 역사 인식도, 준비도 없는 후보에게 나라와 국민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고 윤 후보를 맹비난했다.

그런데 4일 전인 지난 11일 경북 칠곡의 다부동 전적기념관 즉석연설을 통해서는 종전과 전혀 결이 다른 이야기를 한다. "전두환도 공과가 병존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3저 호황'을 잘 활용해서 경제가 망가지지 않도록, 경제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것은 성과인 게 맞다"고 주장한다. "다만 국민이 맡긴 총칼로 국민의 생명을 해친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될 수 없는, 결코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될 중대 범죄다. 그래서 결코 존경받을 수 없다"고 선은 그었디.

그래도 광주에서는 ‘이거’였다가 TK지역에 ‘저거’일수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발언 지역은 달라도 같은 대한민국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학살자의 공과를 재평가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최근 이어져온 이 후보의 ‘말 뒤집기’나 ‘말바꾸기’도 지적했다.

광주와 대구 방문에서 각각 다른 결의 전두환 씨 평가로 내로남불 지적을 받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부인 김혜경 씨가 11일 고향인 경북 안동의 신시장을 방문해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이재명 캠프 제공
광주와 대구 방문에서 각각 다른 결의 전두환 씨 평가로 '내로남불' 지적을 받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부인 김혜경 씨가 11일 고향인 경북 안동의 신시장을 방문해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이재명 캠프 제공

‘우클릭’도 좋고 정치가 아무리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해도 지나친 감이 앞선다. 국민장도 못 치를 정도로 대통령 예우도 받지 못할 정도의 인물의 공적을 얘기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여당의 대선 후보라면 소속 정당이 근거를 두고 있는 가치가 있고 분명한 한계도 있다. 부적절한 발언으로 여겨진다.

그러자 이 후보는 12일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병폐가 흑백논리, 진영논리" "있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면 사회가 불합리함에 빠져들게 된다" "모든 게 100% 다 잘못됐다고 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을 수 있다" "그중 하나가 3저호황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름 능력 있는 관료를 선별해 맡긴 덕분에 어쨌든 경제 성장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한다.

전 씨에 날을 세웠던 입장에서 갑자기 ‘유연’해져도 너무 많이 나갔다. 중도·보수 표심을 잡겠다는 전략적 발언이라고 해도 지나친 ‘유연’이다. 전 씨의 ‘경제 성과’ 가 당시 세계적인 저달러·저유가·저금리 3저가 호황이라는 외부 환경 속에서, 민주노조를 파괴하고 저임금을 강요하는 등 노동자에 고통을 일방적으로 떠넘긴 결과라는 평가가 지금도 엄존한다.

기존의 강성 이미지에서 탈피하는 것도 좋다. 다만 손바닥 뒤집듯 철학과 소신을 바꾸는 것처럼 비친다. 이건 ‘말바꾸기’나 말뒤집기'를 넘어선다. 거의 '빈말'이나‘거짓말’수준에 가깝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정치인의 발언은 어느 정도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너무 표를 의식해서 말을 자주 바꿔 정치적 소신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도 평가했다.

기원 전 5~4세기 무렵 그리스 로마에서는 궤변가로 불리는 소피스트(Sophist)들이 부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했다. 소피스트들은 궤변으로 상대 주장을 무력하게 만들고 승자가 돼 실리를 챙겼다. 거액의 수업료를 기꺼이 지불하고 소피스트의 지도를 받고자 줄을 섰으며 유명 소피스트가 운영하는 아카데미의 문턱은 입학 대기자가 생기는 지경이었다고 전해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후보 시절 김수환 추기경을 방문한 자리에서 하느님을 믿느냐는 질문에 끝까지 확답을 회피한 이유에 대해 거짓말을 하면 고통스럽다는 말을 남겼다./ 더팩트DB· 노무현 재단 제공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후보 시절 김수환 추기경을 방문한 자리에서 "하느님을 믿느냐"는 질문에 끝까지 확답을 회피한 이유에 대해 "거짓말을 하면 고통스럽다"는 말을 남겼다./ 더팩트DB· 노무현 재단 제공

소피스트들의 특징은 논쟁에서의 승리를 유일 최고의 목적으로 삼아 존재한다는 점이다. 도덕과 윤리는 무시하며 체면과 염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승리가 보장되거나 더 큰 이익이 생긴다면 찬성과 반대 입장을 수시로 바꾸는 기이한 행각을 서슴없이 보여줬다. 그게 말 '뒤집기’로 시작해 ' 바꾸기'를 거쳐 ‘거짓말’로 귀결된다. 사회를 혼란으로 내몰고 갈등을 조장하며 파국을 부추길 뿐이다.

정치의 영역은 사회 전반의 대립과 갈등 구조를 조정하고 해결하며, 가치와 이익의 배분을 권위적으로 결정하는 최종적 과정이다. 그런데 정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궤변은 물론이거니와 억지와 거짓말까지 당연한 걸로 여겨진다면? 그건 국민의 불행이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명제로 유명한 군주론의 저자인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지도자의 필수 덕목에 거짓말을 포함했다. 진실을 말하기 위해 노력은 해야겠지만 진실로 인한 커다란 불이익이 발생할 가능성이 예상된다면 거짓을 행해도 된다는 논리다. 여기는 21세기 선진국 대한민국이다. 유력 대선 후보라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궤변이나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 2002년 6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된 뒤 김수환 추기경의 서울 혜화동 처소로 찾았을 때의 일이다. 노무현 후보는 영세를 받아 ‘유스토’라는 세례명을 받았지만 열심히 신앙생활도 못 했다고 한다. 그래서 성당도 못 나가 종교란에는 ‘무교’라고 쓴다고 했다.

당시 김 추기경이 ‘하느님을 믿느냐?’ 고 묻자 애매하게 대답한다. "희미하게 믿는다" 그러자 추기경이 ‘확실하게 믿느냐?’고 재차 묻자 노 후보는 잠시 생각하다가 "앞으로 종교 란에 ’방황‘이라고 쓰겠다"고 대답한다. 이후 한 종교잡지 기자가 노 후보와 둘이 있을 때 물었다. "누가 시비걸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대답을 하셨습니까? 그냥 믿는다고 하시지 않고요?"

노 후보의 대답은 이랬다. "거짓말 하면 고통스럽습니다."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는 유력 대선 후보 두 명에게 이 말은 어떤 느낌으로 와 닿을까 궁금하다. 특히 이 후보의 대답이 불현듯 듣고 싶다.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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