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오른쪽)와 이준석 대표가 지난달 6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음식점에서 오찬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중국 고대사를 보면 어린 황제가 즉위한 직후 주로 외척들이 득세한다. 장성한 뒤에는 외척을 밀어내고, 측근 환관들에게 힘을 실어주며 친정 체제를 정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통상적인 국가 운영상 권력균형의 이동으로 보면 그 과정이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황제를 중심으로 권력 집단 간의 상호 견제라는 긍정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과거 중국은 어린 황제가 즉위했다가 요절하기를 반복, 권력이 외척과 환관 사이에서만 이동하는 현상이 되풀이 되면서 문제가 생긴다. 국정을 장악할 만큼 유능한 황제가 오랜 기간 나오지 않고 세력 간 균형도 무너져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극도로 부패하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후한(後漢) 말기에 어린 황제를 조종해 부패한 정치를 일삼은 환관 집단이다. 이른바 ‘십상시’다. 삼국지라는 100년 이상 중국 대륙의 격동기의 첫문을 연 존재들이다. 새로 태동한 권력의 불균형에 의해 탄생한 일종의 정치적 괴물이다.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구성과 관련, 내부잡음이 끊이질 않는 가운데 잠행에 나선 이준석 대표도 비슷한 생각일까. 물론 본인만의 생각이겠지만 이른바 '윤핵관' 파문이 잠행의 직접적 영향이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때문에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없이 ‘김병준 원톱 체제’로 개문발차한 국민의힘 선대위는 가동 닷새 만에 휘청이는 모습이다. 이 대표는 지난 2일 자신이 페이스북에 남긴 ‘^_^p’ 이모티콘에 대해 "'윤핵관' 당신들이 이겼다고 백기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윤핵관’은 ‘윤후보측 핵심 관계자’라면서 익명으로 한 인터넷매체와 꾸준히 인터뷰한 사람들이다.
이 대표는 이날 "많은 분들이 (P에 대해) 로마 시대 때 검투사들이 살리고 죽이는 것을 이런 식의 의미로 썼다고 하는데 P는 백기의 의미"라며 "더 이상 그 안에 의사결정 구조하에서 윤핵관들과 익명으로 다투면서까지 제 의견을 개진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백기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국민의힘 선대위 갈등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 들어서고 있다. /남윤호 기자 |
지난달 중순부터 이른바 ‘윤핵관’들은 특정 인터넷 매체를 통해 이 대표와 김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난하거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배제하려는 발언을 연일 보도해왔다. 이 대표와 김 전 위원장은 윤 후보 측이 의도를 갖고 관련 기사를 흘리면서 당내 분란을 조장하고 있다는 의심을 한다고 전해진다. 통상 이런 경우 대선 후보가 직접 나서 관련 보도를 부인하는데, 윤 후보는 이 문제와 관련해 무대응으로 일관하면서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윤핵관’은 최근 이 대표가 이수정 경기대 교수의 공동 선대위원장 영입을 반대한 것에 대해서도 "이 대표는 이대남(20대 남성)의 관심 대상일지는 모르나 이대녀(20대 여성)들에게는 혐오 대상"이라며 "윤 후보는 이대남도 이대녀도 모두 중요하고 존중한다"고 했다.
‘윤핵관’은 지난달 18일 김종인 전 위원장의 총괄 선대위원장 합류 여부를 두고 윤 후보와 김 전 위원장의 신경전이 벌어질 때 처음 등장한다. 당시 기사에서 "선대위는 김 전 위원장 없이 갈 수도 있다""총괄 선대위원장 후보군을 3~4배수 준비했다"고 발언했다. 지난달 25일에도 "김 전 위원장이 오늘 조건 없는 합류 선언이 없으면 끝"이라는 ‘윤핵관’ 발언 인용 기사가 나온다.
이 대표는 '윤핵관'에 대해 "다 아시겠지만 여러 명이다. 한 분이 저러고 다닌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익명 메시지가 하루에도 쏟아지고 있다"며 "그 익명 메시지 대부분이 상대 후보를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김종인 전 위원장이나 당 대표에 대해 의도를 왜곡시키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또"이런 식으로 당 대표를 깎아내려서 사태를 해결하려고 하는 분들이 있다면 저에 대한 굉장한 모욕이고 선거의 필패를 의미한다"고 비판했다.
그렇다고 윤 후보가 손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윤 후보는 3일 모든 일정 취소를 주문하고 이 대표와의 갈등 국면을 직접 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리고 이날 오후 울산으로 내려가 전격 회동을 가졌다. 윤 후보가 공개 일정을 접고 회의에 돌입한 것이나 울산까지 내려간 것은 선대위 난맥상을 직접 풀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윤 후보와 이 대표는 '대선에 관한 중요사항에 대해 후보자와 당대표와 원내대표는 긴밀히 모든 사항을 공유하며 직접 소통을 강화한다'고 합의한 것으로 발표됐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3일 오전 제주시 연동의 한 카페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
오는 6일 선대위 공식출범을 앞두고 우여곡절 끝에 국민의힘 갈등은 일단 봉합됐지만 정당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이같은 상황은 ‘낭패(狼狽)’란 말을 떠올리게 한다. 한자사전에는 ‘낭(狼)’과 ‘패(狽)’, 모두를 ‘이리’라는 동물로 표현한다. ‘낭’은 뒷다리 두 개가 없고, ‘패’는 앞다리 두 개가 없는 가상의 동물이다.‘낭’과 ‘패’가 움직일때는 ‘패’가 늘 ‘낭’의 등에 앞다리를 걸쳐 함께 해야 가능하다. 둘의 관계가 틀어질때는 움직일수 없어 굶어죽기 십상이다. 둘이 사이가 벌어져 곤경에 처할 때가 바로 '낭패'다.
‘낭’과 ‘패’는 심성 면에서도 차이가 있다고 한다. ‘낭’은 용맹하지만 지모가 다소 부족한 반면, ‘패’는 순하고 꾀가 뛰어나다. '패'가 지모를 발휘해 사냥감을 몰면 '낭'이 달려들어 쉽게 잡는다. 그런 까닭에 ‘낭’은 기꺼이 ‘패’를 등에 태우고 다닌다.윤 후보와 이 대표는 '낭'과 '패' 처럼 지금은 운명적 관계다. 이들의 향후 행보에 대한 정답은 이미 정해져있다고 본다. 설령 이대표 말대로 ‘윤핵관’이 존재한다 해도 이건 아니다. 윤 후보도 마찬가지다. 낭패를 조금만 숙고한다면 해답은 바로 나온다. 일단 만나서 갈등을 봉합한 만큼 이후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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