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재의 왜들 그러시죠?] 세상이 차갑게 등 돌린 전직 대통령의 죽음
입력: 2021.11.29 00:00 / 수정: 2021.11.29 00:00
1980년 5.18 당시 시민군의 최후 항쟁 거점이었던 옛 전남도청에서 죽음을 맞은 소년 시민군(사망 당시 16살)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씨가 아들의 묘비석을 닦아주고 있다./광주=박호재 기자
1980년 5.18 당시 시민군의 최후 항쟁 거점이었던 옛 전남도청에서 죽음을 맞은 소년 시민군(사망 당시 16살)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씨가 아들의 묘비석을 닦아주고 있다./광주=박호재 기자

“천벌이 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끝내 ‘침묵’…역사공동체에 큰 상처 남기고 떠나

[더팩트 ㅣ 광주=박호재 기자]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죽음에 대한 말들조차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이 남길 후세의 평가를 염려하며 살아간다.

‘메멘토모리’(Mementomori)라는 라틴어 어휘가 있다.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옛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둔 개선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뒤따르는 노예들에게 메멘토모리를 크게 외치게 했다.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겸양을 갖추라는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었다.

나바호 인디언들에게도 메멘토모리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너는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런 삶을 살아라는 잠언이 전해진다.

죽음과 함께 자신의 모든 악덕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교훈하기 위한 풍습들이다. 하지만 웬만한 악행을 저지른 이가 아니면 죽은 자에 대한 세평은 보통은 관대한 편이다. 죽음은 어떻든 개인의 불행이며 남은 이들의 슬픔이라는 감정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죽음이 남긴 세평은 이런 의미에서 전례가 없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부관참시에 다름없는 혹평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5・18 희생자 광주 유족들의 비난은 격렬하다. 이 비난의 화살은 죽기 전에 그를 단죄해야 했으며, 또한 전 씨 자신이 광주 학살에 사과 한마디를 남기지 않았다는 점에 꽂혀있다.

병색으로 초췌해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모습으로 법정을 드나들 때 광주시민들은 솔직히 그의 사과를 기대했다. 보통의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지난 악행의 피해자들에게 사과의 마음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특별했다. 천벌이 두렵지 않느냐는 피해자들의 외침에 침묵의 죽음으로 답한 것이다.

1980년 5월에 어린 자녀를 가슴에 묻은 어머니들은 생전에 5.18희생자들의 묘지 한번 찾지 않고, 사과 한마디 없이 생을 마감한 그에게 저도 자식 키운 부모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탄식했다. 저승에 가서 그 어린 영령들을 무슨 면목으로 볼 수 있겠느냐고 비탄의 심정으로 따져 물은 것이다.

국립5.18민주묘지 2-34묘지에 잠든 소년 시민군 문재학(사망 당시 16살)군의 어머니 김길자(82)씨는 전 씨 사망 소식을 들은 오전 내내 집에서 멍한 상태로 지냈다고 했다. 지난 40여년 전 아들의 죽음이 누구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는지 밝혀내기 위해 동분서주했기에, 전 씨의 죽음 앞에서 멘탈이 붕괴된 것이다.

김 씨는 전두환이 죽었어도 진상조사는 계속 이어져 누가 아들을 죽였는지 꼭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진상이 온전히 규명되지 않고 단죄하지 못한 과거사는 결국 피해자들의 풀리지 않은 한으로 역사 속에 침잠하며, 아물지 않는 공동체의 상처로 남게 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상처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역사 공동체가 건강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친일의 척결이 없었던 현대사는 지금도 여전히 친일논쟁에 사회적 에너지를 허비하게 만들고 있고, 신군부 쿠데타 세력의 국가 내란음모와 5.18학살에 대한 단죄를 외면한 정치사는 지금도 진영 간 잠재된 증오의 불씨가 되고 있다.

5.18구 묘역 입구에 박혀져 있는 전 씨의 비석을 밟는 정치인과 밟지 않는 정치인을 구분해 자격을 따져 묻는 세태가 전형적 사례다. 구 묘역에는 지금도 '전두환 비석도 못 밟는 자는 망월동 방문 자격 없다'는 펼침막이 참배객들을 맞는다.

민족의 혼을 훼손한 부역과 헌정질서를 문란케 하고 인권을 유린한 국가폭력에 대한 단호한 ‘역사법정’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지 못했고, 그래서 아물지 않는 상처들은 간헐적으로 덧날 수밖에 없다.

단죄하지도 못했고 사과하지도 않았던 전 씨 또한 대한민국이라는 역사 공동체에 결코 아물지 못 할 큰 상처를 남기고 생을 마감한 것이다.
forthetru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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