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대결은 자취를 감추고 지지세력간 악랄한 헐뜯기 싸움으로 날 새는 대선 정국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더팩트 DB |
정책대결은 실종, 지지세력 간 악랄한 헐뜯기 싸움 변질 대선 정국 '한심'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정치인들은 지지자들의 증오를 부추겨 표를 모으는 유혹에 함몰되기 쉽다. 진영논리가 충돌하는 선거 구도에서는 더욱 그렇다. 분노라는 격정적인 열기를 모을 수 있는 손쉬운 전략이기 때문이다.
‘분노 프로파간다’는 절대적 지지를 강요하는 파시즘 지향의 정치체제에서 곧잘 써먹는 수법이다. 그러나 실상은 강약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정치 지도자들이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모든 사회적 분노가 지탄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집단적 분노는 사회진보의 동력이 되기도 하며, 이런 경우 정치는 '분노의 조직화' 라고 긍정적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 또한 그러한 집단분노의 동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러나 정치적 결집으로 모아지는 분노는 이타성과 정의에 대한 갈구 같은 숭고한 가치가 밑바탕을 이뤄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경우 왜곡되고 기형적인, 때로는 공동체를 광기어린 양상으로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나치즘이 가장 극단적인 사례다. 세계 1차 대전의 책임을 모두 독일에 지우며 잔혹한 대가를 요구한 베르사유 조약에 대한 독일인들의 분노가 들끓을 때, 히틀러가 이끈 나치당이 등장한다. 히틀러는 이 민족적 분노를 부추겨 집권한 후 유럽국들을 짓밟았다.
유대인 학살 또한 그들을 독일을 파멸시키려 하는 민족으로 선동하며, 이에 따른 국민들의 분노에 기대어 자행됐다. 인류 역사상 유래 없던 참혹한 범죄가 게르만 민족의 도덕적 의무인 양 왜곡된 것이다.
지난 시기 한국의 군부독재 정권 또한 6‧25가 남긴 동족상잔의 상흔인 좌우대립의 분노를 통치에 활용했다.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로 체제가 위기에 내몰릴 때마다 반공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압제의 정당성을 선전하며 정적을 제거하거나 민주 인사들을 억눌렀다.
분단모순이 잉태한 이 분노의 조작극 때문에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거나 삶이 망가졌다.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80년 5월 광주 학살 또한 군부가 퍼뜨린 북한군 개입이라는 마타도어가 악역을 했음은 물론이다.
대선 정국이 정책선거는 실종되고 양 지지 세력 간 치졸한 헐뜯기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사소한 말실수에도 지지자들 간의 격한 분노가 쌍방에서 빗발친다. 심지어는 굵직한 대선 아젠다를 내놓아야 마땅할 여야의 중견 정치인이나 정당의 대변인들까지 이러한 논쟁에 가세하는 실정이다. 모기가 문제라며 소 잡는 도끼를 추겨드는 꼴이다.
얼마 전 전두환 옹호 발언으로 비난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윤석열 후보가 광주를 다녀갔다. 5월 단체들의 항의 속에서도 5‧18 묘역을 참배하고 광주의 피와 눈물을 기억한다며 사과표명을 했다. 그러나 윤 후보의 광주방문은 방명록에 남긴 ‘반듯이’ 라는 어휘 논란에 모든 게 묻혔다. 국어학자까지 나서서 틀린 표현은 아니다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논쟁은 확대됐다. 오로지 비난의 빌미를 잡으려는 의도의 발현이었지, 애초에 맞춤법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윤 후보 지지자들의 행태도 다를 바가 없다. 이재명 후보의 배우자인 김혜경씨가 낙상해 응급차에 실려 간 것을 두고 가해진 폭행논란 파문은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로 악랄하다. 응급차 CCTV까지 공개하는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했다.
상식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전혀 시비 거리가 될 게 없지만 굴절된 렌즈를 들이대니 모든 게 뒤틀려 비춰진다. 양 진영 모두 증오심으로 눈이 가려져있기에 빚어지고 있는 사태다.
선진 정치, 미래정치에 대한 제안들이 분분하지만, 한국의 정치현실을 두고 볼 때 우선 당장은 ‘분노조절 정치’가 필요한 시국인 듯싶다.
2022년 3월 9일, 우리 모두 진정제 한 알씩을 삼키고 투표장에 나가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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