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실, 대통령경호처 국정감사가 국민의힘 의원들이 착용한 대장동 특검 수용 촉구 마스크, 근조 리본을 놓고 정회된 후 여야 간사가 논쟁하고 있다./더팩트 DB |
민생담론 실종, 진영 간 지지자들 증오심에 기댄 헐뜯기 경쟁 극렬 …정치혐오 부추겨
[더팩트 ㅣ 광주=박호재 기자] 정치가 내 삶의 이치에 어긋나 보이거나, 그래서 생활에 무용해 보이는 생각이 들 때마다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내면의 질문에 마주하게 된다. 정치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로선 단번에 답을 찾을 수 없는 쉽지 않은 질문이다.
한학자들은 정치(政治)라는 한자어의 문리(文理)를 깨치면 답을 찾아가는 지름길이 보일 것이라고 조언한다. 정(政)은 바를 정(正)과 칠 복(攵)으로 조합돼 있다. 바르게 만들기 위해서 힘을 행사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를테면 불의와 같은 바르지 않은 것들을 억압해 사회정의와 같은 올바른 가치를 지켜간다는 뜻이다.
치(治)에는 삼수변(氵) 옆에 클 태(台)가 있고, 클 태(台)는 네모난 단 위에 사람이 책상다리를 하고 있는 형상이다. 권력자가 하늘을 보고 천기를 헤아려 물을 다스린다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물을 다스린다는 것은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도록 해 백성을 배부르게 한다는 뜻이기에, 국리민복이 정치가 지닌 절반의 중요한 역할임을 가리키고 있다.
정치가 일궈내는 이러한 유‧무형의 가치들에 대한 분배의 문제가 다시 거론돼야 할 여지를 남기긴 하지만,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정치의 본질은 위 두 가지 명제들에서 크게 벗어나 보이지는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 비췄을 때, 작금의 대선 정국은 걱정스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금 후보군들 중 누가 대권을 거머쥐든 차기 정권의 국정운영에 불안감을 느끼지않을 수 없다. 국리민복을 위한 민생 담론은 전혀 눈에 띄지 않고, 네거티브 이슈를 둘러싼 정치 담론만 칼바람처럼 난무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대한민국 유권자들에게 유력 대선후보의 핵심 공약을 한 가지만 말해보라고 했을 때 제대로 답변하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싶은 의구심이 생겨날 정도다. 이미 여권 후보가 된 이재명 후보와 야권 선두 주자인 윤석열 후보로 폭을 좁힌들 별로 달라질 게 없을 듯싶다. 대장동 사태와 형수 욕설, 고발사주와 전두환 옹호 정도의 네거티브 이슈만 머리를 맴돌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당내 경선 과정에서도 국민의 눈길을 사로잡아 경쟁력을 과시하는 국면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네거티브 이슈로 상대를 헐뜯기에 바빴기에, 대선이라는 전쟁터에서 상대를 이길 장수를 뽑는 당내 경선이 서로의 흠집을 들춰 오히려 본선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대 국민 일러바치기 경주 장이 돼버린 것이다.
진영 간의 네거티브 이슈를 무기삼은 정쟁은 세태어로 ‘팬덤’이라 불리는 열성 지지자들의 타 후보를 향한 증오심을 동력으로 세를 결집한다. 서로 독기를 품은 이 대치 국면에서 정책 공약이 자리를 펼 여유 공간은 없다.
지난 26일 무소속의 양향자 의원이 의미심장한 기업인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야 대선후보들의 과학기술 관련 공약 및 정책 노력이 매우 미흡하다는 불만이 도출됐다. 대선 후보 캠프에서 과학기술 공약이 적절하게 준비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부정평가가 79%에 달했고 대선 과정에서 과학기술정책이 적절하게 다루어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80%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을 정도다.
거의 모든 정치리더들이 입만 열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AI를 중심에 둔 4차 산업에 달려있다고 주창해왔지만, 그 미래를 앞장서서 이끌어 갈 대선후보들의 청사진에서 조차 특별한 정책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국가비전을 제시하는 이슈에 눈 돌릴 틈이 없는 ‘팬덤 대선’의 가장 걱정스런 측면이다. ‘뭘 하겠다’는 약속은 실종된 채, 내가 대통령만 되면 ‘뭘 못하겠느냐’는 배짱만 서로 부딪히는 굉음에 상식을 지닌 국민들의 수심만 깊어간다.
옥에 갇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후보 당시의 일화가 문득 떠오른다. 토론회 장에서 대안을 묻는 난처한 질문에 옹색해지자 "그래서 내가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게 아니냐"고 답했다. 지금의 후보들, 그와 다를 게 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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