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왼쪽부터), 이낙연, 추미애, 김두관, 이재명,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에서 열린 대선 후보자 토론회를 앞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
민주당 송영길 대표 경선 관리 공정 논란 '유감'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중국 촉(蜀)의 정치가이면서 지략가로 유명한 제갈량(諸葛亮)은 진(秦)나라 상앙(商鞅)과 더불어 강력한 법치와 신상필벌(信賞必罰)로 가장 공정했던 관리로 평가받는다.
제갈량은 저서 잡언(雜言)에서 ‘내 마음은 저울과 같아서 사람을 대함에 있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도록 처리한다(아심여칭 불능위인작경중/我心如秤 不能爲人作輕重)’고 했다. 모든 일에 공평무사해서 사사로운 감정이나 이익을 개입시켜 처리하지 않음을 강조했다.
우리말에도 ‘눈이 저울이다’는 말이 있다. 눈으로 짐작한 것이 저울로 단 것처럼 잘 들어맞았다는 의미다. 이처럼 잘 맞추면 저울이 필요 없겠지만 세상 일은 그렇지 못해 분란이 일어난다. 불공정(不公正)과 부정의(不正義)가 이유다.
고대 로마의 정의(正義)의 여신인 유스티티아(Justitia)에서 정의(Justice)가 나왔다. 한 손에 저울, 다른 한 손에 칼을 쥐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지만 의미는 같다.
제갈량의 대표적인 공정한 처리 사례가 읍참마속(泣斬馬謖)이다. 마속은 절친 마량(馬良)의 동생이고 촉의 미래를 맡길만 한 매우 유능한 장수였지만 사사로운 정에 흔들리지 않고 참형했다.
공정 관리의 가장 큰 적은 의심받을 행동이다. 우연이었다고 해도 의심을 살 만한 일을 피하라는 게 선조들의 가르침이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나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 괜한 얘기가 아니다.
경선 관린 공정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국회=이선화 기자 |
중국 전한(前漢) 유향(劉向)의 열녀전(烈女傳)과 양(梁)의 소명태자(昭明太子)가 엮은 시문선집 문선(文選) 악부(樂府)의 군자행(君子行)에서는 "군자는 미연에 방지해 혐의 받을 염려가 되는 곳에는 있지도 말라(군자방미연 부처혐의문/君子防未然 不處嫌疑問)"고까지 강조했다.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정도로 큰일이라면? 두말하면 입만 아프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의 집권 여당 내 대선 후보 경선과 관련한 최근 행보는 크게 실망스럽다.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재명 후보를 편든다는 '이심송심(李心宋心)' 논란을 조기에 잠재우지도 못하고 오히려 불씨를 더욱 지피는 형국이다. 경선 관리의 공정성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셈이다.
이재명 경기지사-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로 양강구도가 굳어지면서 상호 간의 공방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공정한 경선관리가 새삼 중요해지는 시점인데 송 대표의 처신은 오비이락을 넘어서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 특히 이재명 지사의 핵심 공약인 기본소득이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대선 정책기획안에 포함되면서 다른 후보들의 항의를 받았다.
송 대표는 공정한 관리와 ‘원팀’을 주장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재명 지사 캠프를 제외한 후보 캠프들의 불만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송 대표는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후보 간의 유불리에 따라 당 지도부에게 서운함을 표시할 수 있는데, 저와 우리 최고위원 당 지도부는 원팀 정신으로 공정하게 민주당 대선 경선을 이끌겠다"고 강조만 하고 있다.
고용진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마치 당 대표가 특정 후보 공약을 당의 대표 공약에 반영하는 것처럼 하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송 대표가 선수의 라커룸에 들어간 적이 없기 때문에 나올 일도 없다. 앞으로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고, 심판으로서 공정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거들었다. 지난 1일 페이스북을 통해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매는 정도를 넘어섰다"며 "심판 역할을 하는 당 지도부와 보직자는 당장 선수 라커룸에서 나와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물론 노웅래 민주연구원장이 "당 지도부를 흔들면 안 된다"며 "민주연구원의 생활기본소득에 대한 연구는 전임 이낙연 대표 시절, 홍익표 연구원장 때 연구한 주제"라고 반박했지만 민감해지는 현 시점에는 라커룸 출입 여부가 아니라 라커룸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말아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4일 서울 마포구 YTN미디어센터에서 열린 YTN 주최 TV토론에서 이낙연 후보를 지나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
송 대표와 지도부의 진의가 뭔지 모르지만 이렇게 되면 송 대표와 지도부의 경선관리 능력에 대한 의구심마저 들 수밖에 없다. 이낙연 전 대표를 돕는 홍익표 의원은 "제가 원장 재직 시 마지막 버전의 목차를 보면 현재의 것과 다른 점도 많고 기본소득은 언급조차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며 "송 대표와 지도부는 거짓으로 당장의 비판을 모면하려 하지 않기 바란다"고 재반박했다.
송 대표가 이재명 지사를 지원한다는 의혹 제기는 처음이 아니다. 경선 일정을 두고 의견이 갈리던 지난 6월, 송 대표는 "본래 일정대로 경선을 치르자"는 이재명 지사의 의견에 동조했다. 또 7월 20일 삼성전자 화성캠퍼스를 방문할 당시 이 지사와 동행한 것도 그렇다.
3일 불거진 이 지사의 음주운전 전력 논란도 깨끗하게 정리가 되지 못했다. 이 지사 캠프 대변인이 음주운전을 옹호했다는 의혹이 일자 해당 대변인을 사퇴시키는 등 수습에 나섰지만 이 지사를 제외한 거의 모든 후보들이 당 차원의 후보 검증단 설치를 요구하는 분위기다.
이 사안 역시 결과적으로 이 지사의 손을 들어준 형국이 됐다. 4일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지도부에서 별도 논의가 없었고, 논의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며 "레이스가 시작됐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이 후보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크고 (지금) 논의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지만 웬지 찜찜하다.
사회과학적 용어 중에 편향(Bias)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연구하는 상황을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해 최대한 중립적으로 하려 하지만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미에서 출발한다. 당사자는 연구하는 대상에 사로잡혀 있으며, 삶에 대한 경험들로 생긴 편향이 작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은 ‘기계적 중립’이 불가능하며 가능한 한 방법은 그 상황에 끼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 경선은 치열하지만 치사하지는 않아야 한다. 송 대표가 경선을 치열하게 하지 못하게 하고 치사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는 10월 당 후보가 결정되면 경선 캠프를 해체하고 본선 캠프를 다시 짜야 한다. 어차피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 필승을 위한 원팀은 그때 만들어도 늦지 않다. 제1 야당인 국민의힘은 경선을 시작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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