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2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만찬 회동을 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
젊은 리더의 본질은 젊다는 데 있지 않아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전국민 재난지원금' 깜짝 합의가 평지풍파를 불러왔다. 당 대표끼리 합의하고 당 대변인이 발표까지 했는데 1시간 40분 만에 '전 국민 지급'은 없던 일이 됐다. 국민의힘이 합의 번복을 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 대표는 아예 합의 자체가 없었다고 부인했다.
민주당은 "공식 합의였다"며 압박하고 있다. 국회의 2차 추가경정예산안(추경) 심사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여야 대표 간 12일 밤 합의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고 13일 오후 최고위 회의를 열어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당론으로 채택한 상태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여성가족부 및 통일부 폐지에 이어 ‘전 국민 재난지원금’의 합의 후 번복이라는 무리수까지 두게 된 것이다. '이준석 리더십'의 한계가 가시화된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12일 밤의 '깜짝 합의'는 정부가 마련한 추경안의 소득 하위 80%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 지급으로 확대하고, 지급 시기는 방역 상황을 검토해 추후 결정하기로 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그날 오전까지만 해도 국민의힘 소속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재난지원금과 경기부양 예산 대폭 삭감을 예고한 터라 국민의힘 원내지도부와 예결특위 위원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이 대통령 선거를 앞둔 '매표 행위'라고 정부·여당을 강하게 비판해왔던 만큼, 당내에서 반발의 목소리들이 쏟아진 것은 당연하다. 이준석 대표가 최근 도를 넘어서는(?) 거침없는 언행으로 야권 내에서 비판을 듣던 것의 연장선에 있는 사건이어서, 이번 논란이 쉽게 잠재워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여야 대표 합의를 번복, 파문을 일으키면 리더십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국회=남윤호 기자 |
이 대표는 이미 여성부 및 통일부 폐지 논란에 직접 불을 지피며 야권의 비판 여론에도 직면했던 바 있다. 당내에서도 충분히 논의가 안 된 주제를 당대표가 지나치게 가볍게 언급하고 다녔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리더십에도 적지않은 타격을 줄 것으로 여겨진다.
조해진 의원은 페이스북에 "정부조직개편 문제를 대선 예비후보들이 공약 차원에서 주장하는 건 타당하지만, 당 대표가 말하는 건 당론으로 비치는 측면이 있어 의미가 다르다" 며 "당내 소통에 좀 더 노력하고 발언에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윤희숙 의원은 "무엇보다 당내 토론도 전혀 없이, 그간의 원칙을 뒤집는 양당 합의를 불쑥 하는 당대표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며 " 자기 맘대로 밀어붙이는 과거의 제왕적 당대표를 뽑은 것이 아니다. 그는 젊은 당대표의 새로운 정치를 기대한 수많은 이들의 신뢰를 배반했다"면서 이 대표에게 극한 배신감까지 드러냈다.
조직의 성패는 리더의 리더십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능한 리더를 만나면 발전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쇠퇴의 길을 걷는 것은 당연하다. 역사적으로도 이같은 사례는 차고도 넘친다. 리더는 조직의 비전과 방향성을 고려하고 이를 명확히 하는 것이 가장 큰 책임이다.
그래서 쓸데 없이 지위나 권력을 내세우는 경우가 드물고, 목표달성을 위한 방법 등에 있어서도 결코 독단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소통을 중시하고 공정함과 유연성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세계에는 대략 1000개가 넘는 리더십 이론들이 존재한다. 다만 리더십의 효과는 ‘(구성원들이 싫어할 수도 있지만) 필요한 행동’과 ‘(구성원들이 바라고 기대하는) 좋아하는 행동’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 하나로 귀결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운데)가 8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부친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 조문을 위해 빈소로 이동하고 있다./더팩트DB |
30대의 젊은 당 대표가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성공은 단순한 변화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서른 살도 채 되지 않아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 세 대륙에 걸친 광대한 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전쟁에 기상천외한 고도의 신기술을 도입한 인물이 아니다. 선친인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가 개발하고 개량한 장창(長槍)을 보다 대규모적이고 체계적으로 전장에서 이용했을 뿐이다.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삼성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세운 반도체 사업은 이건희 회장의 아이디어가 아니다. 선대 이병철 회장 생각의 산물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선대 회장이 초석을 놓은 아이디어를 초대박으로 이어간 변화의 리더십으로 각광을 받았다.
젊은 리더의 본질은 젊다는 데 있지 않다. 리더는 머리 싸매고 전략과 전술을 궁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건 참모의 역할이고 전문가의 영역이다. 리더는 유능한 전문가들이 소신을 갖고서 활동할 수 있도록 여건과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사람이다.
또 참모진 중에서 충신과 간신을 정확히 구분할 안목과 선구안만 갖추면 된다. 중차대한 결정에 있어 주도적으로 상황을 판단한 후 자기가 내린 결단에 대해 오롯이 당당하게 책임을 지면 된다.
이준석 대표도 신박하고 그럴듯한 아이디어를 당과 국민들 앞에 지속적으로 내놔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그게 오히려 화를 불렀다. 독선이 되고 독단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를 가진 인물들이 야권에 활발하게 합류할 수 있도록 당의 문호를 개방하고, 민심과는 여전히 괴리된 모습을 드러낸 당심을 민심에 수렴·복종시키는 지도력을 발휘하면 된다. 물론 쉬운일은 아니다.
중국 역사서 춘추(春秋)의 대표적인 주석서인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은 일찍이 이를 꼬집었다. "무리의 분노는 거스르기 어려우니 억지 부리지 말라. 자기 욕심만 부리면 일을 이루기 어렵다(중노난범 전욕난성/衆怒難犯 專欲難成)"고 설파했다.
대학(大學)도 "무리의 인심을 얻으면 나라를 얻게 되고, 무리의 인심을 잃으면 나라를 잃게 된다(득중즉득국 실중즉실국/得衆則得國 失衆則失國)"며 경계하고 있다. 이준석 대표가 꼭 새겨야 할 구절 같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도 이번 사달에는 운좋게 비켜갔지만 그동안의 행보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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