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 민주당 대표의 말...그리고 리더십
입력: 2021.07.08 00:00 / 수정: 2021.07.08 06:07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사이먼 스미스 영국대사의 예방을 받고 인사말을 하고 있다./이선화 기자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사이먼 스미스 영국대사의 예방을 받고 인사말을 하고 있다./이선화 기자

‘금기 깨기’가 아닌 '설화'에 가까워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옥의 티끌은 갈아 없앨 수 있지만(백규지점 상가마야/白圭之玷 尙可磨也), 말의 허물은 어찌 할 수 없다.(사언지점 불가위야/斯言之玷 不可爲也)"

공자(孔子)가 문하의 제자를 교육할 때 집대성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 최초의 시가집 시경(詩經), 대아(大雅)의 억(抑)편 한 구절이다. 논어(論語) 선진(先進)편에서는 삼복백규(三復白圭)라는 고사로 진화한다. ‘항상 말조심’하라는 가르침이다.

성경 잠언에도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의 문이 되고 입술은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고 적으며 말 조심을 경계하고 있다. 불교 ‘잡보장경(雜寶藏經)’의 재산 없이도 베풀 수 있는 7개 보시라는 무재칠시(無財七施))에도 '언시(言施), 즉 부드럽고 다정한 말로 상대방을 감동시키고 즐겁게 한다‘가 들어있을 정도로 말이란 가장 신중하고 가려서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에 대한 수양’ 이른바 신언(愼言)을 강조한 성인, 군자들은 넘친다. 고사와 속담과 격언과 금언 등에서도 셀 수 없을 정도다. 역사적으로도 그만큼 막말이나 험담으로 인한 설화(舌禍)가 많았던 탓이다. 태조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국한 정도전의 비참한 말로 역시 설화 라는 주장도 있다.

일정대로 비교적 무리 없이 잘 진행되던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이 다시 잡음을 일으키고 있다. 장본인이 송영길 당 대표다. 대권 주자들이 반발하고 당 내외에서도 시끄럽다. 지난 5일 열렸던 관훈 토론회에서 한 발언이 화근의 시작이었다.

사회자가 "친문 세력이 대선 경선에서 이재명 지사를 견제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냐"는 질문에 송 대표는 "소위 대깨문(강성 친문 당원을 일컫는 비속어)이라고 떠드는 사람들이 ‘누구는 되고, 안 된다’ ‘누가 되면 차라리 야당이 되겠다’ 이런 안이한 생각을 하는 순간, 문재인 대통령을 지킬 수도 없고 제대로 성공시킬 수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는 표현에서 ‘대깨문’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5일 서울 여의도 IFC몰 CGV에서 진행된 대선 출마선언식에서 행사장을 찾은 정세균 전 총리와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이낙연 캠프 제공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5일 서울 여의도 IFC몰 CGV에서 진행된 대선 출마선언식에서 행사장을 찾은 정세균 전 총리와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이낙연 캠프 제공

당대표가 당원들을 비난할 의도는 없었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발언 자체만 보면 ‘나가도 한참 나간 발언’이다. 강성 지지층을 비하하는 이 말을 당원들은 듣고 매우 불편했을 것이다.

대선 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 측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만들어낸 민주당 당원들이 모욕감을 느꼈다"고 반발했다. 정세균 전 총리도 "공적인 자리에서 당 지지자를 비하하는 의미로 악용되는 용어를 썼다:고 비판했다. 당대표 사퇴 요구까지 맞닥뜨린 상황이다.

‘대깨문’도 문제지만 발언 전체 뉘앙스가 마치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처럼 들려 평지풍파가 일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 정도다. 경선이 진행되는 과정에 당대표가 공식석상에서 했으니 문제는 가벼울 수가 없다.

이 시기의 당 대표는 대선 경선을 공정하게 잘 치르는 것이 중요한 임무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 일부 당원의 비판과 대선 주자들에게 비난받고 있다. 당원으로부터 "당 대표가 당 최대 리스크 요인"이라는 불만을 듣는 게 오히려 당연해 보일 정도다.

송 대표가 강조한 ‘원팀’에 대한 의구심도 생길 수밖에 없다. 원팀이라는 명제도 좋지만 지금은 공정한 경선 관리가 최우선이다. ‘당이 하나가 되자’는 취지였다는 송 대표의 해명은 찜찜함만 더한다. 잘못한 점이나 대선 주자들에게 오해받을 내용이 있다면 변명성 해명보다는 ‘쿨 하게’ 사과하고 다시 실언을 하지 않으면 된다.

파문이 수그러들지 않은 가운데 7일에는"박정희 정권이 포항제철을 만든 게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추켜세웠다. 이날 오전 당 반도체 기술 특별위원회 6차 회의 모두 발언에서 "포항제철이 철을 만들어서 우리 사회를 농업에서 공업사회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며 이 같이 말했다.

1971년 4월 7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마산수출자유지역 건설현장을 시찰하고 있다./마산자유무역지역관리원 제공
1971년 4월 7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마산수출자유지역 건설현장을 시찰하고 있다./마산자유무역지역관리원 제공

송 대표는 "박 대통령이 만주군 시절 중국 제철소를 벤치마킹해 원료를 만든 현장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포항제철이 만들어졌다. 이어서 삼성 반도체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일부 언론은 중도층 공략을 위한 ‘금기 깨기’ 행보로 보고 있긴하나 개인적으로는 실언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해도 공당의 대표라면 그것도 집권 여당의 대표라면 이런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당이 대표의 전유물이 아니고 내부적으로 합의된 사안도 아닌 듯하기 때문이다.

특히 박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당의 정체성을 고려해 최소한 지도부 공감은 있어야 한다. 직접 확인해 볼 수 없지만 독단적 돌출 발언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역시 자살골에 가까워 보인다는 게 개인적인 판단이다. 중도층도 '일과성 돌출 발언' 정도로 생각할 것 같다.

말은 곧 생각이다. 죽이는 말은 생각이 되지 못한 채 미성숙한 감정의 배설에 지나지 않는다. 감정배설의 욕구를 다스리는 절제는 자기 관리의 최고 습관이고 인물평가의 중요 척도이기도 하다.

서양에서 ‘리더의 언어’가 주로 출세의 무기로 받아들여졌다면, 동양에서는 마음 공부의 수단이었다. 서양에서 말을 날카롭게 다듬는 방법에 초점을 두었다면 동양에서는 말을 둥글게 다듬는 방법, 마음 다스리는 수양법에 방점을 두었다.

리더십도 같은 맥락이다. 상황적 여건이 좋을 때에는 업무 지향적이지만, 나쁘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관계 지향적으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유연한 대처는 절대 독단적이고 돌출적이지 않다. 말도 마찬가지다. 송 대표가 깊이 새겨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민주당은 현재 위기 상황이다.

bienns@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