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 민주당 대선경선 연기 논란, 해법은 있다
입력: 2021.06.24 00:00 / 수정: 2021.06.24 00:21
23일 오후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이 열린 국회 본회의장에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대표(오른쪽)와 윤호중 원내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이선화 기자
23일 오후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이 열린 국회 본회의장에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대표(오른쪽)와 윤호중 원내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이선화 기자

SK·LG 배터리 합의 노력 바이든 대통령 사례 참고해야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역사적으로 특정 집단이나 패거리가 대의명분만을 좇다가 낭패를 당한 경우는 적지 않다. 우리 역사를 들춰봐도 마찬가지다. 조선 중기의 사색당쟁(四色黨爭)이 대표적이다.

효종(孝宗)의 다음 임금인 현종(顯宗) 때에 벌어진 예송논쟁(禮訟論爭)은 기가 막힐 정도다. 효종(孝宗)의 상(喪)에 계모(繼母)인 조대비(趙大妃)가 상복(喪服)을 얼마간 입어야 옳은지를 놓고 서인(西人)과 남인(南人)이 치열하게 싸웠다. 14대 선조 때부터 22대 정조 때까지 200여 년이나 이어졌으니, 나라가 나라가 아니었다. 민생은 도탄에 허덕이면서 민심은 이반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민주당이 대선 경선 시기를 두고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대동소이(大同小異)해 보인다. 한쪽은 당헌·당규에 따라 ‘원칙’대로 대선 180일 전까지 후보를 세워야 한다는 입장이고 다른 한쪽은 코로나19의 국내 사정이나 흥행을 고려해 경선 시기를 늦추자는 주장이다. 정당의 당연한 목표인 정권재창출은 격화되는 당내 경선 갈등 때문에 어디로 갔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대선주자 사이에서 의견 차이는 극명하다. 이낙연 전 대표, 정세균 전 국무총리, 이광재·김두관 의원 등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일정대로 경선이 치러진다면 흥행이 어렵고 조기 등판으로 인해 상대 당의 집중 견제를 받는다는 이유로 전 국민 집단면역이 이뤄지는 11월로 미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지율이 여당후보들보다 높은 강력한 야당 후보가 있는 만큼 실리에 비중을 두는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반면 여권 주자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박용진 의원, 추미애 전 장관 등은 당헌 규정대로 원칙을 존중하고 민심에 부응하는 가치와 비전으로 경쟁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원칙 고수가 실리의 전략적 선택보다 유리하다는 생각 같다.

양측 모두 일리가 있다. 재집권을 노리는 집권당이라면 국민 참여라는 흥행도 좋지만 국민 과 약속을 지킨다는 신뢰 또한 저버릴 수 없다. 지난 4·7 재보궐선거에 당헌을 바꿔 후보를 냈다가 참패한 기억이 아직 생생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당대표 후보 시절 경기도청을 찾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간담회를 갖고 있다. /더팩트 DB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당대표 후보 시절 경기도청을 찾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간담회를 갖고 있다. /더팩트 DB

민주당은 일단 대선 전 180일 선출을 기본으로 25일 대선경선기획단이 선거 일정을 포함한 기획안을 최고위에 보고하면 최고위가 최종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다만 양쪽이 맞서고 있고 자칫 집단 행동도 우려되는 분위기라 그날 결론을 도출해낼지 낙관하기는 이르다. 송영길 당대표는 그날 경선 일정 확정 의지가 강하긴 하다.

‘대통령 후보자의 선출은 대통령 선거일 전 180일까지 하여야 한다’는 당헌 88조를 준수할지, 아니면 ‘상당(相當)한 사유(事由)’를 근거로 일정을 연기할지가 쟁점이다. 그러나 ‘180일 조항’은 지난해 민주당 8월 전당대회 때 대선후보 선출 절차를 특별당규로 제정하며 거듭 합의된 것이어서 경선 연기를 둘러싼 논란이 쉽사리 가라앉지는 않을 것 같다.

당시 전준위는 14대 대선 때부터 ‘180일’로 돼 있던 대선후보 선출 시한을 ‘100일’로 단축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야당 대선후보 선출 시한이 대선일로부터 120일인데 먼저 민주당 후보를 선출하면 야당의 공격에 노출 기간이 길어지니 후보 선출 시점을 늦추자는 게 핵심 논점이었다.

전준위는 이런 우려에도 ‘180일’ 규정을 유지하기로 최종 결론냈다. 당헌 88조 등을 근거로 대통령선거후보자 선출규정은 ‘특별당규’로 격상했다. 이 과정에서 대선주자들의 의견도 모두 수렴했다고 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후보들 간 유불리가 다르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특별당규로 만들어놓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연기 가능한 조문인 ‘상당한 사유’의 의미는 뭘까. 국립국어원의 우리말 풀이에 따르면 조문의 ‘상당한’은 문맥에 맞게 ‘타당한, 해당하는,적절한, 많은’의 뜻이라는 것이다. ‘이치에 맞아 올바르고 마땅하다는 뜻인 정당(正當)한’이나 ‘논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타당(妥當)한’과는 결이 다소 다르다는 설명이다.

또 ‘사유(事由)’는 일의 까닭으로 어떤 일이 전제되어 있고, 그러한 일이 일어난 까닭을 가리키는데 제한적으로 쓰인다고 한다. 반면 ‘이유(理由)’는 어떤 결론이나 결과에 이른 까닭이나 근거를 가리키는 데 포괄적으로 사용된다. 연기론자의 논리도 ‘상당한 사유’에 포함되지 않는 건 아닌 듯하다.

무엇보다 양측의 정략적 의도의 이면을 들여다 보면 해결점이 없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선두 주자는 빨리 경선을 치르고 대선후보가 되는 것이 유리하다. 대선 기간을 많이 남겨놓고 당의 중심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후발 주자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그래야 판을 뒤집고 추격할 기회도 생긴다.

한 자리에 모인 여권 대선주자들. 가운데 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두관 의원, 박용진 의원, 박완주 정책위의장, 정세균 전 국무총리, 부인 남윤자씨, 양승조 충남지사./더팩트DB
한 자리에 모인 여권 대선주자들. 가운데 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두관 의원, 박용진 의원, 박완주 정책위의장, 정세균 전 국무총리, 부인 남윤자씨, 양승조 충남지사./더팩트DB

다만 민주당의 대선후보들의 상황은 상당 부분 그렇지 않다는 게 결론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선두 주자가 당을 장악하거나 야권의 유력 후보를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 선두 주자의 친문에 대한 의심도 한몫하고 있다. 불신이 대립의 본질처럼 여겨진다.

또 9월 중 정상적 경선은 어려워졌다는 판단도 민주당 내부에서 나온다. 여기에 정부의 백신 접종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당초 계획보다 집단면역을 앞당길 수 있을 가능성은 한층 커졌다. 민주당 지도부의 고민이 그래서 더욱 깊어진다.

얼마 전 LG와 SK가 미국에서 벌였던 배터리 분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를 인용해볼 필요가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SK가 LG의 영업비밀을 침해한 배터리 관련 부품을 10년간 미국에 수입할 수 없다고 한 ITC 결정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SK가 올해 말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전기자동차 배터리 공장은 가동이 불투명해질 공산이 컸다.

당시 시제품을 생산중인 공장에 2600명이 채용될 예정이었다. SK가 추가로 건설중이던 공장까지 무산되면 총 6000여명의 일자리가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바이든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입을 타격도 엄청났다.

그렇다고 ITC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 미국은 지식재산권 침해에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 왔고, 바이든 대통령도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를 강력하게 비난해 왔다. ITC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바이든 대통령이 주창한 지식재산권 보호라는 원칙을 뒤집는 격이 된다.

해법은 LG와 SK의 합의였다. 바이든 정부는 양측과 만나 엄청난 중재 노력을 기울여 합의에 크게 한몫한 것으로 전해졌다.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양측이 합의를 이루도록 매일 종용했다는 후문이다.

현재 민주당 지도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대척점에 있는 원칙과 현실의 조율이다. 해답은 바이든 대통령의 LG·SK 사례에서 확인된다. 민주당지도부는 신속히 갈등을 매듭짓기 위해 부단한 물밑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민심의 이탈을 막고 정권 재창출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대선 후보들도 ‘이해득실’이 아닌 ‘선당후사’로 ‘원칙’에 입각한 신뢰와 ‘실리’를 위한 전략에 힘을 합쳐야 한다.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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