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우려와 성공 조건
입력: 2021.05.05 05:00 / 수정: 2021.05.06 09:53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가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이선화 기자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가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이선화 기자

친정부 성향 탈피...개혁 성공보다 정치적 중립 유지가 관건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중립(中立)을 그대로 풀면 ‘중간에 서 있음’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아니하고 공정하게 처신함, 국가 사이의 분쟁이나 전쟁에 관여하지 아니하고 중간 입장을 지키는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우유부단함을 자기합리화하여 아무 의견도 못 내는 건 중립이라 하지 않는다.

의미는 그러해도 현실적으로는 명쾌하지 않다. 정치적 중립이 더욱 그러하다. 여러 의견 가운데 극단에 있는 두 의견만의 중간을 중립이라고 여길 수도 있고, 의견들을 모두 포함해서 평균을 낼 수도 있으며, 의견을 낸 사람들의 수까지 고려할 수도 있다. 각자의 편을 번갈아가며 들어주는 것이 곧 중립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특히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가운데 집권 정부에 대한 공무원의 정치적 대응을 강조하는 정치적 중립 의무와 비파당적 객관성에 근거한 공무원의 전문가적・독자적 판단을 부각시키는 정치적 중립 의무 간의 상충과 양립의 문제는 현재 국내외에서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대한민국 검찰이 처한 현실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3일 임기내 마지막 검찰총장 후보자로 김오수(58·사법연수원 20기) 전 법무부 차관을 지명했다. 문제는 김 후보자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함께 대표적인 ‘친(親)정부’ 검찰 인사로 거론돼온 인물이라는 대목이다.

전임 총장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23기)의 3기수 선배지만 청와대가 전례 없는 ‘기수 역전’을 감수하면서 김 후보자를 밀어붙인 것도 이른바 ‘친정부’ 성향이 크게 작용한 이유라는 게 중론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일정이 잡히기도 전인데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부터 쏟아지고 있다.

신임 검찰총장에 지명된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 전 차관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3월 4일 임기를 4개월가량 앞두고 중도 사퇴한 지 60일 만에 새 검찰수장에 낙점됐다./임세준 기자
신임 검찰총장에 지명된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 전 차관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3월 4일 임기를 4개월가량 앞두고 중도 사퇴한 지 60일 만에 새 검찰수장에 낙점됐다./임세준 기자

김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난 2017년 8월 법무연수원장(고검장급)으로 승진했다. 이듬해 6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박상기·조국·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등 3명의 장관을 차관으로서 보필했다.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김 후보자가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사이자 최종 후보군 4명 가운데 정부의 신뢰가 가장 높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김 후보자는 앞서 윤 전 총장과 총장 자리를 놓고도 경쟁했으며 이후 금융감독원장·공정거래위원장·국민권익위원장 등 현 정부의 요직 후보군마다 이름을 올렸다. 김 후보자의 이 같은 행보를 감안해 법조계 안팎에서는 후보군이 ‘4파전’으로 압축될 때부터 김 후보자의 '낙승'이 점쳐졌다.

실제 그는 조국 전 장관 수사에서 ‘윤석열 당시 총장을 제외하고 수사팀을 꾸리자’는 제안을 하는 등 친정부적 행보를 취해 왔다. 감사원 감사위원(차관급) 추천 때는 김재형 감사원장로부터 ‘친정부 인사라서 안 된다’며 거부당하기도 했다.

이성윤 서울지검장이 후보대열에서 중도 탈락하면서 정부 입장에서는 앞으로 문대통령의 임기 마지막까지 함께 할 ‘믿을 맨’으로 꼽는 배경이기도 하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조차 우려가 나오는 것도 다름아니다.

특히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유임이 점쳐지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대선을 1년여 앞두고 ‘김오수-이성윤’이라는 ‘정권 수호대’를 꾸릴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인사는 검찰을 완전히 정권에 예속시킨다는 의미를 가질 것이라는 성급한 분석까지 나온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사퇴 이후 뒤숭숭한 검찰 조직을 수습하는 것이 될 것 이라는게 중론이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등검찰청, 서울지방검찰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감사를 앞두고 생각에 잠겨있다/더팩트DB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등검찰청, 서울지방검찰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감사를 앞두고 생각에 잠겨있다/더팩트DB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도 지명 배경에 대해 "검찰 조직을 안정화시키는 한편, 국민이 바라는 검찰이 되도록 검찰개혁이라는 시대적 소임을 다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검찰 조직 안정과 개혁이라는 2가지 측면에서 문 대통령이 김 후보자를 선택했다는 뜻이다.

검찰 내부에선 김 후보자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주문도 이어진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김 후보자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도 "친정부 성향의 인사라는 지적을 해소하기 위해 검찰총장 스스로 검찰의 독립성 보장하기 위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했다. 어떤 형태로든 여권의 검찰개혁 드라이브가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자칫 정부와 후배검사들 어느 쪽에도 서지 못하는 ‘오리알’ 처지가 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검찰 조직 안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어한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충돌할 수밖에 없는 두 가치 사이에서 김 후보자는 외롭고 힘든 운명에 놓일 수 있다. 향후 중대한 수사 국면에서 내리게 될 결단도 어떤 식으로든 문재인 정부와 내년 대선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군자는 화합하되 휩쓸리지 아니하고, 가운데 바로 서서 기울어지지 않는다(화이불류 중립이불기 강재교/和而不流 中立而不椅 强哉矯)". 공자(孔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근간을 잡은 중용(中庸) 제10장을 보면 공자는 이렇게 "중립(中立)을 강자(强者)의 도리"라고 설파한다. 강자는 군자이자 리더를 일컫는다.

중립은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항상 ‘올바른 행동’이지 ‘알맞은 행동’이 아니다. 사회가 불안정해지거나 자신이 위협받는 상황이 오면 일반인들은 ‘올바른 행동’보다 ‘알맞은 행동’으로 기울면서 자기합리화를 꾀하는 경향이 있다.

모두가 변해도 검찰총장은 변하면 안 된다. 검찰총장은 나라가 망하더라도 올바름을 고수해야 한다. 올바름은 정의이자 공정이다. 그래야 국민들과 후배검사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 김오수 후보자에게 금과옥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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