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문자폭탄' 한 달, '더불어'와 '민주'는 어디로?
입력: 2021.05.04 05:00 / 수정: 2021.05.04 05:00
더불어민주당의 문자 폭탄을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친문 색채가 옅은 송영길 신임 당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원팀을 강조한 만큼 앞으로 어떻게 이 문제를 풀지 이목이 쏠린다. 2일 임시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대표 수락연설을 하는 송 대표. /남윤호 기자
더불어민주당의 '문자 폭탄'을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친문 색채가 옅은 송영길 신임 당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원팀'을 강조한 만큼 앞으로 어떻게 이 문제를 풀지 이목이 쏠린다. 2일 임시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대표 수락연설을 하는 송 대표. /남윤호 기자

'집단 린치' 문자 폭탄, 적극 권장하는 최고 위원 등장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퇴근 후 집에 돌아간 날, 초등학생 아이는 축 처져 있었다. 이유가 궁금해 물었지만, 좀처럼 말을 하지 않았다. 10살짜리 꼬마는 "묻지마. 말하고 싶지 않아." 이유가 궁금했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밤이 깊어 아이는 잠이 들었고, 아내를 통해 이유를 들었다. 아이는 전날 단짝 친구와 다음 날 학교에서 어떤 놀이를 함께하기로 했다. 그런데 쉬는 시간 단짝은 다른 친구와 놀면서 자기를 끼워주지 않았다고 한다. 네 명이 함께하는 놀이였지만, 이미 다른 친구 세 명이 모이면서 자신이 있을 자리가 없어지게 됐다. 친구가 약속을 어기면서 외톨이는 아니지만, 외톨이가 된 것이다.

부모로서 안타까운 마음에 아이에겐 앞으로 학교생활에서 비슷한 일이 많을 것이며, 그럴 때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너 역시 무리를 지어 혼자 있는 친구를 따돌리는 나쁜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어른들의 세상도 아이들의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의도적으로 혼자가 되는 상황을 웃으며 넘겨야 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진다. 유치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개인의 생각을 접고 다수에 수긍하게 된다. 하지만 생각이 다르다고 다수의 횡포에 시달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것도 수권정당 내에서, 정의와 공정을 가치로 내세우는 민주 정당에서 요즘 이 문제로 시끄러운 것은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일 민주당은 임시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했다. 초선으로 최고위원에 선출된 김용민 의원은 대표적 친조국 인사로 분류되는 친문이다. 특히 그가 '문자 폭탄'을 대하는 자세는 일반적 상식을 넘어선 수준이어서 주위를 놀라게 한다.

김 최고위원은 3일 문자 폭탄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하는 분들의 의사 표시는 당연히 권장돼야 될 일"이라며 "국민들께서 정치인들에 대한 소통에 너무 목말라 계셔서 이렇게라도 소통하고 이렇게라도 의사를 표명하고 싶으신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일방적으로 욕설이나 비방 같은 것들의 문자들은 받는 사람도 굉장히 힘들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문제의 본질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의 말을 해석하면 '욕설이나 비방의 내용이 아니면 적극적으로 하세요'라고 할 수 있다. 많게는 하루에 수천 통의 메시지를 받으며 즐거워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무슨 인내력이나 정신력 테스트도 아니고. 문자를 받는 사람들이 겪을 정신적 충격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자기합리화가 아닐까.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 정신적 고통을. 오죽하면 댓글 하나에 상처받고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김용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문자 폭탄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하는 분들의 의사 표시는 당연히 권장돼야 될 일이라고 밝혔다. 2일 중앙당사에서 열린 임시전국대의원대회에서 정견발표한 김 의원. /남윤호 기자
김용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문자 폭탄'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하는 분들의 의사 표시는 당연히 권장돼야 될 일"이라고 밝혔다. 2일 중앙당사에서 열린 임시전국대의원대회에서 정견발표한 김 의원. /남윤호 기자

'문자 폭탄', 좋게 말하면 적극적인 의사표시 정도일 것이다. 다르게 보면 집단이기주의(특정 집단이 다른 이들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특수한 이익 추구에만 몰두하는 태도나 현상)다. 더 나쁘게 말하면 무리를 이룬 이들이 누군가를 특정해 괴롭히는 '집단 린치'와 폭력, 또는 '왕따'와 다름없다. 과거 '사랑의 매' 논리는 애교 수준에 불과하다.

부모는 아이에게 학교에서나 놀이터에서나 학원에서나 친한 친구들끼리 무리 지어 누군가를 괴롭히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민주 정당이라는 곳에서 이런 문제가 근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으니, 참 웃기는 일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책 '보노보 찬가'를 또 꺼내 보았다. 책 제3장 '이 땅의 소수자를 위하여' 내용 중 마암분교 학생의 시가 나온다.

'꽃은 참 예쁘다

풀꽃도 예쁘다

이 꽃 저 꽃 저 꽃 이 꽃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조 전 장관은 이 시를 인용하며 '우리 사회의 다수자는 이 꽃과 저 꽃은 다르며, 저 꽃은 더러운 꽃, 지저분한 꽃, 기분 나쁜 꽃, 열등한 꽃, 뽑혀서 버려야 할 꽃, 씨를 말려야 할 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지적했다. '문자 폭탄'을 보내며 생각이 다른 이를 '조리돌림'하는 행태를 정확하게 지적한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에 '더불어'와 '민주'가 보이길 바라본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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