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오는 11월 집단면역 달성을 재차 강조했다. /청와대 제공 |
"백신 정치 언급은 불안감 해소에 도움 안 돼"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상앙(商鞅)은 전국시대(戰國時代) 진(秦)나라 명재상이다. 진이 천하통일을 하는데 주춧돌을 놓았다. 그는 법의 제정이나 제도의 실행에 매우 신중한 면모를 보였다. 한번은 법을 제정해놓고도 시행하지 않고 뜸을 들였다. 왕이 까닭을 묻자 "만들고 시행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 백성들이 조정을 믿고 따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며 고심 끝에 묘책을 낸다. 이목지신(移木之信)의 유래다.
남문에 나무 기둥 하나를 세워놓고 ‘이를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 십금(十金)을 주겠노라’는 방을 써 붙였다. 누구도 옮기려는 사람이 없었다. 상금을 틀림없이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상앙은 다음날 상금을 올려 ‘오십금’을 주겠다고 다시 방을 붙힌다. 그러자 한 젊은 청년이 나무 기둥을 북문으로 옮겼고 상앙은 약속대로 그에게 ‘오십금’을 주어 백성들로 하여금 나라가 백성을 기만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게 했다. 이후 백성들이 조정을 잘 믿고 따른 건 불문가지다.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코로나 백신 확보와 접종 등은 차질없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히고 "백신 문제를 정치화하지 말라"고 정치권과 언론 등에 당부했다. 특히 오는 11월 집단면역 달성을 재차 강조하며, 현재 우리나라에 상륙한 화이자 등 3가지 백신 외에 다른 백신들에 대한 안전성 등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도 했다.
정부가 처음부터 ‘11월 집단면역’이란 목표를 분명히 제시했고 그에 따른 접종 순서와 접종 계획을 밝혔지만 대통령이 재차 강조한 이유는 백신에 대한 여러 가지 논란이 끊이지 않은 탓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백신 문제가 정쟁의 소재로 다뤄지면서 수급과 접종에 대해 국민들이 막연한 불안감을 갖게 부추기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고 전했다.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도 같은 날 대국민담화를 통해 "일각에서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토대로 백신가뭄 등을 지적하며 국민께 과도한 불안감을 초래했다"면서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홍 직무대행은 이날 현재 국내 총 계약 물량은 1억 9200만회분(9900만 명분)이며 정부가 제약사와 계약한 백신 도입 예정 물량이 지연된 사례는 한 건도 없다"고 강조했다.
홍남기(앞줄 가운데) 국무총리대행을 비롯한 관계부처 장관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코로나19 백신 관련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임영무 기자 |
홍 직무대행은 "백신 개발 국가인 미국과 영국, 백신이 조기 확보된 이스라엘을 제외하면 모든 국가들이 백신 수급의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백신 수급의 불확실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생산 기반을 가진 국가"라는 점을 강조했다.
접종과 관련해서도 예방접종센터를 내달 초까지 267개로 늘리고 민간 위탁접종의료기관은 내달 말까지 1만 4000여개소로 확대해 하루 최대 150만 명 이상의 접종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9월 말까지 전 국민의 70%인 3600만 명에 대한 1차 접종을 완료하고,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까지 학교 교원 및 종사자에 대한 백신 접종을 마무리 짓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정부는 특히 당초 예정됐던 6월보다 두 달 가량 앞당겨진 28일부터 30세 이상 군 장병 12만 6000명을 대상으로 군부대, 군 병원 등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 이달 초부터는 75세 이상 고령층을 시작으로 일반인 대상 접종도 본격화 하고 있다. 이달 내에 300만명 접종을 끝내겠다는 정부의 목표 달성도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백신 접종 후 사망 신고와 중증 이상 반응 신고가 잇따르지만 큰 문제는 없다, 아직 사망자와 백신 간의 인과성이 밝혀진 사례도 아직 밝혀진게 없다. 수급에도 걱정이 적어 보인다. 관련 전문가들도 국민들에게 불안감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상황은 이러한 데도 백신의 수급과 접종의 불안감은 가시질 않는다. 야당 공세와 언론 보도태도가 일조한 탓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정 부분 분명해 보인다. 백신 논란에 정치권은 끼어들지 않는 게 정답이다.
홍주의 대한한의사협회장과 이상훈 대한치과의사협회장, 신경림 대한간호협회장,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 정영호 대한병원협회장, 김대업 대한약사회장(왼쪽부터)이 지난 2일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공개적으로 받았다. 이번 공개접종은 백신에 대한 국민 불안감이 커지자,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나서서 백신 안전성에 대한 국민 신뢰를 높이고 접종 참여 분위기를 확산하기 위해 마련됐다./이동률기자 |
대통령이나 정부여당이 이를 언급하는 것도 불안감 진정에 큰 도움이 안된다고 본다. 정부 여당이 국민이 알고자하는 관련 정보들을 정확하고 발빠르게 공개하는 것은 옳은 일이고 불안감 해소에 분명 도움이 된다.
하지만 ‘백신정치’ 언급은 그렇지 않다. LH 사태 수습 등 정부가 최근 내놓은 각종 정책들에 대한 대국민 신뢰가 회복되지 않은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정부여당의 불안감 해소용 발표에 ‘긴가 민가’하는 국민들의 눈에는 책임 전가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상앙이 법을 만들어 놓고 곧바로 시행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무 옮기기’라는 실천을 통해 백성들의 신뢰를 얻은 뒤 반포와 실행을 동시에 했다. 실행에 있어서도 누구에게나 엄중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것도 물론이다.
‘까치발을 해서는 오래 서 있지 못하고 가랑이를 한껏 벌려서는 제 길을 걷지 못한다(기자불립 과자불행/企者不立,跨者不行)'이라고 했다.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24장(章)에 있는 경구다.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은 말 그대로 순간에만 통할 뿐이다. 대국민 신뢰 회복에 도움이 안 되고 나중에 실행 약속까지 차질이 생긴다면...
조금 급하더라도 충분히 해낼 자신이 있다면 진행되는 변화와 정부 대응 사이에 있는 간격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성과를 내가며 진행하면 된다. 정부는 내심 자신있어 보인다. 신뢰가 문제지만 다급할 필요가 없다.
홍 대행의 발표대로 진행만 된다면 두 세달 뒤는 정부의 백신 정책 모두를 국민들이 신뢰할 것이라고 믿는다. K-방역 성공에서 이미 경험한 적이 있지 않은가. 약속을 반드시 실천해가면 신뢰는 쌓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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