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원의 인사이드 부스] 못다 핀 해설의 꿈
입력: 2007.05.09 11:07 / 수정: 2007.05.10 13:17
-- 더팩트에서 정지원 스포츠 전문캐스터의 칼럼을 독점으로 게재합니다. 10여년 동안 방송계에 몸담으며 보고 듣고 느꼈던 부분들을 바탕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독자들께 전할 예정입니다.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스타들의 모습과 방송 뒤에 숨겨져 있는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솔직담백하게 풀어낼 [정지원의 인사이드 부스]에 많은 관심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더팩트 운영자 드림. --
 

[더팩트 I 정지원칼럼니스트] '故 심욱규 선생을 기억하십니까?'

국내 여자농구에서 고 심욱규 선생을 모르면 간첩이다. 심욱규 선생은 인천 인성여고의 감독으로서 정은순, 유영주 등 1990년대 국내 최고의 여자 스타들을 키워낸 주인공이다. 현재 여자농구를 주름잡고 있는 대부분의 스타들도 심 선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국가대표 출신 삼성생명의 이종애 선수도 심 선생이 발굴한 제자 중 한 명이다. 중3까지 높이뛰기 선수로 활약했던 이종애는 심 선생의 간곡한 권유로 인성여고 1학년 때 처음 농구공을 잡았다고 한다. 결국 이종애는 4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또한, 현 국가대표인 금호생명의 신정자 선수도 1999년 국민은행 입단 당시 팀 기술고문이었던 심 선생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이제 신정자는 용병들과 대등하게 몸싸움을 벌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토종 포워드이자 팀의 간판스타로 성장했다.

평생을 농구 지도자로 헌신했던 심 선생은 한국프로농구(KBL) 원년 1997시즌에 iTV를 통해 해설자로 데뷔했다. 훤칠한 키에 건장한 체격을 지닌 심 선생은 보라색 셔츠에 하얀 바지 등 화려한 의상을 즐겨 입던 멋쟁이였다. 심 선생의 목소리는 걸쭉하고 탁했지만 힘이 넘쳤다. 해박한 농구 지식과 풍부한 현장 지도 경험에서 나오는 맥을 짚는 해설은 단기간에 농구팬들을 매료시켰다. 당시 필자와 심욱규 콤비의 농구 중계방송에 대한 호평이 2000-2001 시즌까지 3년간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게시판과 사내 게시판을 뜨겁게 달궜다.

나중에는 심 선생의 어록까지 생겼다. "슈터는 팬들을 즐겁게 하고 백보드를 지배하는 자는 감독을 즐겁게 합니다", "패스트브레이크(속공)는 농구의 가장 쉬운 득점 전략입니다!" 등 심 선생의 재기 넘치는 방송멘트들이 유행처럼 번졌다. 심 선생 특유의 높은 톤이 생동감 있는 리듬을 타기 시작하면 시청자들은 신나고 흥분된 상태로 경기에 몰입되었다. 심 선생과 필자는 정말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는 중계방송을 추구했다.


<사진설명 : 전 금호생명 감독 정해일씨(좌측)와 故 심욱규 선생>

2000-2001 시즌을 끝으로 필자는 아나운서에서 기자로 전직했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분주하던 어느 날 심 선생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동인천 차이나타운 한 식당에서 심선생은 "정지원씨! 어디 다른 데로 가나? 갈 계획이면 함께 가자구." 기자로의 전직을 나름대로 다르게 해석한 심선생에게 필자는 "아닙니다. 저는 다른 회사로 가는 것이 아니고 직종을 전환한 것입니다." 그제서야 상황파악을 하신 심 선생은 필자가 아나운서를 그만두는 것에 대해서 매우 섭섭해 하셨다. "근데 요즘 소화가 잘 안돼서 속이 계속 안 좋아. 왜 이러지?" 고개를 갸우뚱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건강관리 잘 하시라는 말씀을 드리며 헤어졌다. 그런데 그 만남이 우리가 함께 한 마지막 만찬이 될 줄이야….

그 후 심 선생이 췌장암에 걸리셨다는 비보가 날아왔다. 악성에 말기라는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건강하시던 분이…. 필자는 당시 취재 시스템을 익히느라 정신없던 시절이었다. 전화도 바로 못 드리고 한 일주일 쯤 지나서 인하대 부속병원으로 문병을 갔다. 병실 문을 들어서는 순간 필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90kg이 넘게 나가던 심선생의 몸무게가 불과 한 달도 채 안돼서 50kg까지 빠져 있었다.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달라진 심선생의 모습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태연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힘내시라고 위로해드렸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필자는 인생의 무상함에 흐르는 눈물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결국 심 선생은 며칠 후에 돌아가셨다. 너무도 급박하게 돌아간 일들이라 실감이 나질 않았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필자는 뉴스를 제작했다. 돌아가시기 전 방송하시던 모습과 스틸 사진을 총동원해서 심 선생 추도 뉴스를 내보냈다. 슬퍼하는 정은순과 유영주의 인터뷰를 편집하면서, 기사를 쓰면서 또 원고를 읽어 내려가면서 목이 메어 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프로농구 해설계에 선풍을 일으켰던 고 심욱규 선생. 스포츠 중계방송에 전문성과 유머를 동시에 전할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최고의 경지에 오른 방송이라고 확신한다. 지금까지 그런 방송에 가장 근접했던 해설자를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없이 심 선생을 추천한다.

활짝 피어보지도 못하고 해설의 꿈을 접어야만 했던 농구계의 큰 별 심욱규 선생. 지금 그에게 들려주고 싶다. "선생님! 이젠 많이 잊혀졌지만 아직도 당신을 찾는 팬들이 있답니다. 지금 저 먼 곳에서 편히 쉬고 계실 당신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함께 했던 지난날들이 무척 그립습니다."

jcast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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