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투볼파크] 투수와 지명타자
입력: 2017.06.17 04:00 / 수정: 2017.06.17 04:00
롯데 최준석(오른쪽)이 16일 넥센전에서 1루를 지키고 있다. /넥센 제공
롯데 최준석(오른쪽)이 16일 넥센전에서 1루를 지키고 있다. /넥센 제공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롯데가 16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넥센과 원정경기에서 황당한 실수를 했다. 이날 경기에서 이대호를 지명타자, 최준석을 1루수로 기용하려고 했는데 주심에게 제출한 배팅 오더(타순표)에는 수비 위치를 바꿔서 써넣은 것이다.

1회초 롯데 공격에서 최준석이 3번타자, 이대호가 4번타자로 타석에 섰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1회말 넥센 공격에서 최준석이 1루수로 나오자 장정석 넥센 감독이 항의했다. 롯데는 타순표에 있는 대로라고 착각했지만 실제로는 1루수 이대호를 지명타자 최준석으로 교체한 것이 된다. 따라서 지명타자가 수비에 나갔으므로 교체된 이대호의 타순에 투수 노경은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경기 중 지명타자의 소멸로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일은 종종 있다. 야구규칙에 규정된 지명타자 제도가 없어지는 경우는 여섯 가지지만 대부분은 지명타자가 수비로 나갔을 때 벌어진다. 더 이상 던질 투수가 없어 야수가 투수가 되었을 때도 지명타자가 소멸된다. 하지만 타순표에 수비 위치를 잘못 기재해 초반부터 지명타자가 없어지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지명타자는 기본적으로 투수의 대타다. 다만 다른 대타와 달리 수비 위치에 들어가지 않고도 경기에 남을 수 있다. 투수는 타선에 포함시키고 다른 야수 대신 지명타자를 쓸 수는 없다. 지명타자는 오로지 투수를 대신해 공격할 수 있는 타자다.

'지명타자의 소멸'은 투수의 타격이라는 (지명타자가 있는 리그에서는)어색한 상황을 만들지만 나름대로 효율적이다. 지명타자로 기용된 선수를 나중에 수비로 쓸 수 있도록 함으로써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수비 요원을 추가로 남겨두지 않아도 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롯데의 경우는 오로지 실수로 한 명의 선수, 그것도 팀내 최고의 강타자를 쓸 기회를 없애 버린 것이다.

지명타자 제도가 있는 리그에서는 투수가 타격 훈련을 안 하는 것은 물론 타격 기회도 거의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가장 약한 타자다. 그런데 만일 투수의 타격 솜씨가 좋아서 대타로 쓰고 싶다면? 야구규칙은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모두 규정을 마련해 두고 있다. 지명타자가 소멸과 관련된 항목에 '등판 중의 투수가 지명타자의 대타자 또는 대주자가 되었을 때 등판 중인 투수는 지명타자 외에 다른 선수의 대타자 또는 대주자가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오래 전 해프닝이 하나 있었다.

1986년 OB와 MBC의 경기에서 OB는 9회말 1사 1,2루의 기회를 맞았다. 다음 타자는 8번 타순의 포수 김경문. OB는 대타를 내세웠는데 9회초부터 마운드에 오른 박노준이었다. 투수는 지명타자 자리에만 대타가 될 수 있다. 즉 규칙상으로 보자면 박노준은 다른 선수의 차례에 타격을 하는 부정위타자(improper batter)가 된 셈이었다. 부정위타자가 타격을 끝냈을 때 다음 타자에게 투구를 하거나 다른 플레이를 하기 전에 상대팀이 어필하면 부정위타자는 아웃이 되고 진루나 득점이 있었어도 무효가 된다. 박노준은 3루 땅볼로 2사 2,3루. MBC의 어필은 없었다.

4번 지명타자 자리에 들어가야 할 박노준이 8번 자리에 들어가 일단 부정위타자가 됐고, 그 다음은 5번타자 김형석이 돼야 하는데 그는 3루주자로 나가있었다. 박노준 다음 타석에 다시 대타 이승희가 나섰고 그 역시 3루 땅볼로 이닝 종료. 연장에 들어가면서 이승희가 원래 3루수였던 9번타자 구천서 대신 3루수로 나갔다. 즉 박노준은 8-9-1-2-3번 타순을 건너 뛰었고 이승희는 5-6-7-8번을 건너 뛰어 OB는 두 번이나 부정위타자를 내보낸 것이다. MBC는 10회 말에야 이를 알아차리고 박노준이 부정위타자가 아니라 부정선수라고 주장하며 몰수게임이 돼야 한다고 항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타율과 득점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지명타자 제도의 효과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 않지만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이닝을 건성으로 넘기지 않게 된 것만큼은 틀림없다. 누구든 출루하면 득점으로 연결할 수 있는 희망이 있다. 그런데 롯데는 한 순간의 실수로 그런 가능성을 없애버린 것이다. 이날 경기에서 롯데는 넥센에게 1-2, 단 한 점 차로 졌다.
malis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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