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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연의 어떤씨네] '퍼시픽 림', 거대 자본의 물량공세에 묻힌 델 토로의 노력
입력: 2013.07.11 17:28 / 수정: 2013.07.11 17:28

올여름철 극장가 외화 중 최대 기대작으로 꼽히는 퍼시픽 림. 상상력과 3D 기술은 뛰어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과 억지스러운 감정 코드는 영화 몰입을 방해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영화 포스터
올여름철 극장가 외화 중 최대 기대작으로 꼽히는 '퍼시픽 림'. 상상력과 3D 기술은 뛰어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과 억지스러운 감정 코드는 영화 몰입을 방해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영화 포스터

[김가연 기자] 이름만 들어도 영화 애호가들을 설레게 하는 감독이 있다. 뛰어난 상상력과 빈틈없는 이야기 전개로 '크로노스'(1992)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2006)를 만든 길예르모 델 토로(49) 감독도 그렇다. 이름 하나로 전 세계 영화 팬들을 들썩이게 한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거대한 로봇과 외계 괴수 이야기를 다룬 '퍼시픽 림'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쉽다. 짧게 이야기하면 그의 전작과 같은 역작을 기대한다면 포기하고 관람하는 것이 좋다.

이마를 탁 칠만한 상상력과 두 눈과 귀를 도저히 뗄 수 있는 화려한 기술이 화면을 가득 채우지만, 내용은 이미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 조잡한 내용만 듬성듬성 묶어놨으니 진득하게 영화를 즐기기엔 역부족이다. 2000억 짜리 '팝콘 무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영화 자체의 상상력은 뛰어나다.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12년 후인 2025년 일본 태평양 연안. 심해에 커다란 균열이 일어난다.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이곳은 지구와 우주를 연결하는 포털이었다. 여기서 엄청난 크기의 외계 괴물 '카이주(Kaiju)'가 나타난다. 일본 전역을 시작으로 미국과 중국 러시아 호주 등 지구 곳곳을 파괴하며 초토화하는 '카이주'의 공격에 전 세계가 혼돈에 빠진다.

지구는 비상사태 돌입하고 세계 각국의 정상들은 인류 최대의 위기에 맞서기 위한 지구연합군인 범태평양 연합방어군을 결성, 각국을 대표하는 메가톤급 초대형 로봇 '예거(Jaeger)'를 만든다. 상상을 초월하는 슈퍼 파워, 뇌파를 통해 파일럿의 동작을 인식하는 신개념 조종시스템을 장착한 예거 로봇과 이를 조종하는 최정예 파일럿들이 괴물들에게 반격을 시작하면서 사상 초유의 대결이 펼쳐진다. 과연 지구는 '카이주'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까.

범태평양 연합군에 속한 5개 나라의 거대 로봇 예거의 특징은 다 다르다. 130분간의 상영 시간 동안 이를 파악하고 영화를 즐기기엔 역부족이다./영화 포슽
범태평양 연합군에 속한 5개 나라의 거대 로봇 '예거'의 특징은 다 다르다. 130분간의 상영 시간 동안 이를 파악하고 영화를 즐기기엔 역부족이다./영화 포슽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한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전 세계 남성들을 흥분하게 한 '트랜스포머' 시리즈, 머나먼 미래 세계를 상상해서 다룬 '아바타', '아이언맨'과 '헐크' '토르' '캡틴 아메리카' '스파이더맨' 등 마블사의 캐릭터를 영화화한 작품 등 놀라운 상상력으로 만든 영화는 많다. 델 토로 감독도 '괴수 대 거대로봇'이라는 대결 구조로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눈과 귀를 가만두지 않는 거대한 액션 장면이다. 여러 가지 능력을 갖춘 '예거'와 '카이주'의 싸움은 이전 영화에서 볼 수 없는 화려한 액션의 완성이다. 델 토로 감독은 이를 위해 예거와 카이주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육상과 해상 공중에서 벌어지는 거대 전투 장면들을 만들었다. 촬영은 세계 최대 규모 세트인 캐나타 토론토 파인우드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콘포드라고 불리는 거대한 세트 위에서 특수한 의상을 갖춰 입은 배우들이 탁월한 액션 연기를 보여줬다.

안타깝게도 거기까지다. '퍼시픽 림'은 2000억 원이 들어간 3D화면으로 가득 채우면서 내용은 이미 태평양 바다로 떠나보냈다. 여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여러 설정을 넣었다. '트랜스포머'는 단순히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해서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 '퍼시픽 림'은 '거대로봇'이라는 기본적인 설정은 '트랜스포머'와 같지만, 이를 조정하는 것은 사람의 두뇌고, 사람과 로봇이 결합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퍼시픽 림에서 두 명의 조종사가 거대 로봇 예거와 완벽하게 합체한다는 드리프트 개념을 시도했다. 상대방의 정신이 완전한 연결을 이뤄야 하기 때문에 드리프트 개념을 넣었지만, 복잡 미묘해 관객이 이해하기엔 좀처럼 쉽지 않다./영화 스틸컷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퍼시픽 림'에서 두 명의 조종사가 거대 로봇 '예거'와 완벽하게 합체한다는 드리프트 개념을 시도했다. 상대방의 정신이 완전한 연결을 이뤄야 하기 때문에 드리프트 개념을 넣었지만, 복잡 미묘해 관객이 이해하기엔 좀처럼 쉽지 않다./영화 스틸컷

이를 위해 델 토로 감독은 인간과 로봇의 합체 즉 드리프트(Drift)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두 명의 파일럿이 한 몸처럼 움직여 예거와 합체해 조종하는 신개념 조종시스템이다. 예거의 정교함과 어마어마한 크기 때문에 뇌가 신경 과부하가 걸릴 수 있어 한 사람만으로는 조종할 수 없다. 결국 두 사람이 함께 조종할 수 밖에 없어서 한 명은 예거의 우반구를, 한 명은 좌반구를 조종해야 한다. 이 방법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두 사람이 로봇과, 또 상대방의 정신이 완전한 연결을 이뤄야한다. 일반 관객이 130분간의 상영 시간 내내 터지고 부수고 싸우고 정신없는 난리 통 속에서 예거의 정교함을 이해하며 영화의 깊이를 느끼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

영화 중간마다 보이는 억지 감동 코드도 부자연스럽다. '트랜스포머'나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등 할리우드 대작의 기본에는 지구를 지킨다는 설정이 깔렸다. 지구를 지키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 등과 헤어지면서 다시 만나게 되는 매우 작위적인 이야기 전개이며 '퍼시픽 림'도 전혀 다르지 않다. 부자간의 화해나 국가를 위한 개인의 희생, 가슴 시린 절절한 사랑이 녹아 들어가 영화를 보는데 방해한다.

전작처럼 깊이 있는 영화를 만들려는 델 토로 감독의 노력이 오히려 거대한 자본력의 물량공세에 묻혀 '퍼시픽 림'은 단순한 팝콘 무비가 되고 말았다. 엉성한 이야기 구조는 3D 기술로 도배를 해도 한계를 드러냈다. 이마를 탁 칠만한 놀라운 상상력에 어디서도 따라 하기 어려운 3D 기술을 더했다고는 하지만 왠지 2% 부족하다.

한 줄 평: 거대한 자본력에 잠식당한 델 토로의 노력, 결국 2000억 짜리 팝콘 무비로 남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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