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현정 기자] 멘토 1위, 우리시대의 진정한 영웅 1위, CEO로 영입하고 싶은 리더 1위…….
19일 드디어 대선출마를 선언한 안철수(50)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수식어다. 쉽게 얻은 타이틀이 아니다. 50년 동안 여러 차례 마주했던 선택의 기로에서 '강단 있는' 결정으로 이뤄낸 성과물이다. 무엇보다도 공대의 꿈을 접고 의대를 선택한 게 지금의 '안철수'를 만든 토대가 됐다. 의대 공부를 위한 '컴퓨터 공부' 덕분에 컴퓨터 바이러스를 발견하면서 의사를 포기하고, '안랩(구 안철수연구소)'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최고경영자 자리를 버리고 과감하게 월급쟁이 생활을 선택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선택을 해온 안 원장의 50년 인생을 돌아봤다.
◆ '꿈' 공대 < '부모의 바람' 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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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공대의 꿈을 접고 부모의 바람대로 의대에 진학했다. 왼쪽 위 사진은 어린 시절의 안 원장이며, 나머지 세 장은 1980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사진과 의대 활동 사진이다. / 사진출처 = MBC '황금어장' 방송 캡처, 안철수를 사랑하는 모임 트위터 |
안 원장은 어려서부터 '활자광'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매일 책을 몇 권씩 읽을 정도였다. 안 원장 스스로도 "당시 책의 페이지 수, 발행년월일, 저자까지 모두 다 읽고 바닥에 종이가 떨어져 있으면 그것마저도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활자 중독증이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책 읽는 양과 성적이 비례하지는 않았다. 60명 중 30등을 할 정도로 평범했다. 때문에 의대를 꿈꾸는 것은 불가능했다. 심지어 피만 보면 무서워서 기겁할 정도로 의사는 꿈도 꾸지 않았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생각이 바뀌었다. 공대 진학을 꿈꿨지만, 부모의 바람대로 의대에 진학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독서밖에 몰랐던 그는 의대 진학을 위해 공부에 열을 올렸다. 반에서 중위권이던 성적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치솟기 시작했다. 3학년 때에는 비로소 1등을 하게 됐다. 그 결과, 1980년 전국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만 모인다는 서울대 의대에 당당하게 입학했다.
◆ '미래 보장' 의사 < '모험' 백신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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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원장은 7년간 의사와 백신 제작자로서 이중생활을 해오다가, 더 재미있고 더 잘할 수 있는 백신 제작자의 길로 돌아섰다. / 사진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
1986년 의대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기초 의학을 전공했다. 공부에 대한 열의가 뛰어났던 안 원장은 전공 실험을 더 잘하기 위해 컴퓨터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 때 안 원장의 인생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킨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바이러스를 발견한 것이다. 바이러스 때문에 애를 먹던 한 후배는 안 원장에게 바이러스 치료 방법을 물었다. 후배에게 치료 과정을 설명해줬으나 그 후배는 쉽게 알아듣지 못했다.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 이유다. '백신'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으로, 현재 통용되고 있는 안랩의 백신 프로그램 'V3'의 최초 버전인 'V1'이 바로 그것이다. 이후 바이러스가 나올 때마다 백신을 공짜로 배포했다.
때문에 낮에는 의사, 밤에는 백신 제작자로 7년간 '이중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매년 2배씩 생겨나는 바이러스는 안 원장 혼자로는 해결하기 힘들었다. 반년간의 고민 끝에 한 가지 직업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미래가 보장된 의사가 아닌 백신 제작자였다. 백신이라면 더 재밌고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컸기 때문이다. 이후 7년 동안 모아놓은 백신 자료들을 가지고 비영리 공익 법인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정부 부처, 기업 등에서 줄줄이 거절당했다. 결국 안 원장이 직접 나서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1995년 세워진 게 '안철수연구소'다.
그러나 안철수연구소는 적자로 운영됐다. 직원들에게 월급 주기도 어려웠다. 때마침 미국의 거대 백신업체인 맥아피(McAfee)에서 인수를 제의하며 1000만 달러를 제시했다. 하지만 안 원장은 거액의 제의에도 인수를 거절했다. 자신의 직원들이 실업자가 된다는 사실이 싫었고, 한국의 백신이 해외 업체에 장악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나라 컴퓨터 사용자들은 지금까지 무료로 백신 프로그램을 공급받고 있으며, 인터넷강국으로 떠올랐다.
◆ '월급 주는' CEO < '월급 받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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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원장은 안철수연구소를 경영상 안정한 궤도에 올려놓은 후 돌연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 그 후 교수 생활에 매진하고 있다. |
1999년 체르노빌 바이러스 사건이 터지면서 안철수연구소는 '대박'이 터졌다. 창립한 지 4년 만에 흑자경영으로 돌아선 것이다. 하지만 안 원장은 돌연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한 지 10년 만이다. 대신 이사회 의장 자리를 맡기로 결심했다. 회사가 안정 궤도에 들어서면서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필요성을 느꼈고, 업계 전반적으로 도움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실수와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바꿀 수 있도록 각 분야에서 전문성 있는 사람을 기르겠다는 것이다.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는 교수 생활에 열중했다. 가족과 미국 유학생활을 끝내고 2008년 4월에 귀국한 안 원장은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로 발탁돼 기업가 정신을 가르쳤다. 2011년에는 포항공과대학교의 이사로 선임됐으며,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부임했다. 교수 생활을 하면서 안 원장이 얻은 게 있다면 바로 '유머'다. 지난달 23일 방영된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이하 힐링캠프)'에도 출연해 이와 같은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 '지지율 50%' 서울시장 출마 < '박원순 지지' 불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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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26일 치러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5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얻은 안 원장은 선거를 50여일 앞두고 '박원순 지지'를 선언했다. |
기업인과 교수로서 성공한 삶을 살아온 안 원장은 정치권의 러브콜을 숱하게 받았다. 참여정부의 정보통신부 장관직부터 국회의원, 서울시장 출마 제의를 여러 차례 받았다. 하지만 "정치를 잘할 자신이 없고 힘을 즐기지 못한다"는 이유로 모조리 거절했다.
2011년 8월 다시 피어오른 안 원장의 정계 입문설에는 힘이 붙기 시작했다. 안 원장의 멘토로 불리던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이 "안철수가 (10·26)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 출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공식적인 말 한마디 없었지만 50%에 육박하는 지지를 받았다. 반면, 당시 안 원장과 경쟁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지지율은 10%에 불과했다.
안 원장의 50%에 달하는 지지율이 발표된 다음날인 9월6일, 안 원장은 뜻밖의 선택을 했다. '박원순 지지'를 선언하며 사실상 서울시장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지지율의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지지율상 안 원장의 출마가 유력했다. 안 원장은 당시 "박원순 변호사는 서울시장을 누구보다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아름답고 훌륭한 분"이라고 말했다. 안 원장의 '남다른' 선택으로 박 시장은 현재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한 시민과 일대일 소통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 대통령 선거 '국민의 성원' 출마 ≧ '기존 성향' 불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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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원장은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을 내고,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하는 등 사실상 대선 행보를 보이고 있다. / 사진출처 = 출판사 김영사 홈페이지, SBS '힐링캠프' 방송 캡처 |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불출마선언과 동시에 대선 출마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지난해 11월에는 자신이 보유한 안철수연구소 주식의 절반가량(약 15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정치적' 행동이라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대선출마설이 나온 지 반년이 지났음에도 안 원장의 거취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대선에 출마할지 않을지) 양쪽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이제 국민의 판단을 한번 받아봤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 와중에 사실상 정책집이라 불리는 '안철수의 생각'을 출간했다. 출간한 후에는 '힐링캠프'에도 출연했다. 사실상 대선 행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힐링캠프'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예비후보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예비후보가 출연해 지지율 상승효과를 봤던 예능프로그램이다.
때문에 정치권은 대선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지도 않은 안 원장에 대한 검증을 시작했다. 지난 13일에는 안 원장이 세운 공익법인 '안철수재단'이 '사실상 활동 불가' 판정을 받았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그의 신분을 사실상 '대선 예비후보'로 봤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선을 5개월여 앞둔 현재 안 원장이 언제 어떤 선택을 할지, 그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littlejhj@tf.co.kr[더팩트 정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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